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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이토가 죽으니 통감 집에 불이 나네

by 버블티짱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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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20일 후, 서울 남산자락 통감관저 녹천정綠泉亭 남쪽 마루 아래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정원사가 보고 급히 소리치며 사람을 불러모아 끄기는 했지만, 건물은 어지간히 타버렸던 모양이다.

당시 통감 소네 아라스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구경꾼(신문에는 "위문하고자"라 했지만..)이 관저 앞으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왜 불이 났는지 온갖 소문이 돌았으리라.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독립을 꿈꾸는 이의 통감 암살 시도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법하지만 신문에선 찾을 수 없다.

1909년 11월 16일자 대한매일신보 기사


다음날 발표된 실화 원인은 벽난로 굴뚝. 거기에서 일어난 불똥인지 뭔지가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09년 11월 17일자 대한매일신보 기사


그런데 하필이면 타버린 건물이 "이토 공의 좋은 기념으로 영구히 보존할 건조물"이었다. 아마 그가 통감 시절에 머물며 "남산각하녹천정南山脚下綠泉亭" 따위 풍월을 읊던 정자였던가 본데, 실은 그보다 더 깊은 내력을 지닌 집이었다.

통감관저 터엔 원래 세조의 왼팔 권람이 살던 집 후조당이 있다가, 철종 때 정승을 지낸 박영원이 꾸리던 별서 녹천정이 들어선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녹천정'이다. 그 건물 중 하나가(아마 녹천정 본채?) 이 무렵까지 남아있다가 변을 당했던 걸로 보인다.

아아! 녹천정의 슬픈 운명이여. 이후에도 '녹천정'은 통감관저, 총독관저를 일컫는 별칭으로 간혹 사용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해방되고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자리엔 위안부 기억의 터라는 기이한 현대 유적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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