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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70

[1차 고려거란전쟁] (2) 거란의 요구를 파악한 서희 뒤늦은 대처에 급조한 군사로 거란을 방어하고자 한 고려 조정이 얼마나 허둥지둥댔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라, 그래도 일단 한 번 막는 시늉이라도 해 봐야겠고 해서 고려는 역시나 문관 중심 사령부를 구성하니 시중侍中 박양유朴良柔가 총사령관인 상군사上軍使가 되고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徐煕는 넘버투인 중군사中軍使, 문하시랑門下侍郞 최량崔亮은 하군사下軍使가 되어 북계北界에 진을 치고서는 거란을 방어하는 시늉을 한다. 이때 고려 성종은 서경西京에 행차 중이었으니, 전방을 독려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연례 행사라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왕 나간 김에 안북부安北府까지 가서 전방을 시찰하려 한다. 이 무렵 소손녕蕭遜寧은 이미 봉산군蓬山郡을 공격하여 선봉군사先鋒軍使인 급사중給事中 윤서안尹庶顏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에 이.. 2024. 3. 1.
[1차 고려거란전쟁] (1) 뻘짓한 고려 편의상 고려거란전쟁을 세 차례 있었다 하지만, 누누이 말했듯이 그것 말고도 두 왕조 사이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끝임없이 벌어졌다. 치열한 탐색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널리 알려졌듯이 993년, 고려 성종 12년, 요遼 통화統和 11년에 펼쳐진 제1차 전쟁이라 이 전쟁이 실은 두 왕조에 모두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거란 부마 소손녕蕭遜寧이 자칭 80만을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 했지만 이는 개뻥이며, 실제 동원한 군사는 절반도 안 된다. 쪽수가 많다 해서 겁박했을 뿐이다. 다행해 이 전쟁이 이렇다 할 충돌없이 외교협상으로 끝나서 그렇지망정이지 하마터면 고려 국토가 초토화할 뻔 했다. 우리는 이 조우에서 세 치 혀 서희에 의한 이른바 강동육주 획득을 한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외교협.. 2024. 3. 1.
거란, 유쾌 통쾌 상쾌를 넘어선 파트너로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적당한 골리앗을 불러내 다윗을 자처한 우리 스스로가 그런 거인을 쓰러뜨리는 일을 소일로 삼고는 그러한 일을 유쾌 통쾌 상쾌로 치부하곤 했으니 근자에 저런 자리에 손님으로 불려나온 이가 거란이라. 수나라도, 당나라도 불려나와 유희거리가 된 판국에 거란쯤이야 해서겠지만, 또 그런 그간의 심리 이면에는 거란으로서는 약발이 약해서였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거란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력한 힘과 광활한 영토,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무장한 거대 제국이었다. 그네들 영토는 동서로 만리를 걸쳤다 했으니, 실상 그 땅덩어리만 해도 한 제국, 수 제국, 한 제국을 능가하며, 당대 중국 대륙을 장악한 송宋조차 발 아래 두고서는 형으로 군림하며 매년 따박따박 세폐라는 이름의 막대한 조공품을 받.. 2024. 2. 28.
거란의 수도 방위군 앞서 거란군 수도 방위 시스템을 논급했으니 이는 그 시스템을 간단히 도해화한 것이다. 오행五行에서 비롯하는 오방五方에 기초해 중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사방에다 호위군을 배치했다. 이 호위군을 피실皮室이라 했으니 황제를 보호하는 피부막과 같은 조직 군대라는 뜻이다. 左피실은 곧 東피실이며 右피실은 곧 西피실이다. 가운데 黃피실이 내 추정에 의하면 아마도 천운군天雲軍이라 별칭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와는 별도로 움직이는 기무사령부였을 것이다. 그런 증언이 없지만 틀림없이 저들은 각기 오방색을 따라 깃발이나 군복 색깔을 달리했을 것이다. 곧 계절로는 봄 기운 싹트는 해 뜨는 동쪽 좌피실은 청색, 남방 자오선 태양이 지나는 여름의 남쪽 남피실은 이글거리는 태양색깔인 주색, 해가 지는 서쪽 우피실은 가을에.. 2024. 2. 26.
[귀주대첩] (16) 주력 상비 최정예군이 궤멸된 거란 귀주대첩이라는 고려의 대승으로 끝난 이른바 제3차 고려거란전쟁은 자칭이기는 하지만 거란군이 동원한 군사 규모가 이전과 비교해 적은 10만이라서 언뜻 보기엔 당시 거란 국력을 고려해 이 정도는 전면전이 아니지 않았나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서희의 담판으로 끝난 1차 전쟁에 언필칭 80만, 성종 야율륭서가 친정한 2차 전쟁에 40만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적은 숫자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 숫자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 질이 문제인 까닭이다. 80만, 40만이라 하지만 이는 실상 그 보급부대를 합친 것이라, 실제 전투를 치르는 군사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10만이라 해도 실상 아무리 거란 국력을 고려해도 만만찮은 숫자다. 이 3차 전쟁을 어떤 자세로 준비했는지는 요.. 2024. 2. 26.
물경 3회에 걸쳐 다룬 김훈 최질 막부정권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드라마라는 특성상 사초에 적힌 기록대로 따라갈 수는 없고 이른바 작가적 상상력을 덧보태기 마련이라, 예서 그 드라마 승패는 결정난다. 이 드라마를 지탱하는 3대 실록 축은 조선전기에 정리된 고려 쪽 기록으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있고, 거란 쪽 기록으로는 원나라 지정至正 연간에 완성된 요사遼史가 있다. 이를 축으로 그 얼개를 엮어간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또 하나의 실록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문제 또한 적지 않게 노출한다. 그를 논하기 전에 이 드라마가 불러낸 공로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중부에 의한 무신정권 수립 100년 전에 이미 두 차례나 더 고려에는 막부정권이 있었음을 확실히 각인한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 강조의 정변과 김훈 최질 막부정권..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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