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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70

왕가도, 거란 선제공격을 주장한 매파(2-2) 두 건의 찬반투표 현종이 죽고 그의 아들 덕종德宗이 재위하던 시절 이야기다. 왕가도는 덕종의 장인이기도 하다. 덕종이 칭제하기 시작한 그 원년 1031년 6월 3일, 내내 고려와는 문제를 일으킨 거란 6대 황제 성종聖宗이 사망하고 그 아들 야율종진耶律宗眞이 즉위하니 이가 7대 황제 흥종興宗이다. 종주국으로 섬기는 왕조 황제가 사망했으니 공식 사절 조문단을 파견해야 했다. 그 소임을 공부낭중工部郞中 유교柳喬와 낭중郞中 김행공金行恭이 뽑혀 가게 됐다. 한데 거란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 이를 틈타 부마駙馬 필제匹梯가 동경東京을 근거지로 삼아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 사태를 어찌 할 것인가? 이때 왕가도는 대 거란 강경파 선두주자에 서서 “거란은 우리와 우호를 맺고 예물도 교환하지만 매번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2024. 2. 13.
김종현金宗鉉, 제3차 고려거란전쟁의 숨은 영웅 김종현金宗鉉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기는 현종 2년 4월 6일 기유라, 고려사 현종본기 해당 항목에 이르기를 황보유의皇甫兪義와 최창崔昌 둘다 시어사侍御史로 임명하고, 유소柳韶를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김종현金宗鉉과 박종검朴從儉을 모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임명했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런 김종현이 같은 현종본기에 의하면 그 10년 3월 7일 갑자甲子에는 이응보異膺甫가 우복야右僕射로, 강민첨姜民瞻이 응양상장군 주국鷹揚上將軍 柱國으로, 유참柳參이 예빈경禮賓卿으로 전근한 그날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이름을 다시 드러낸다. 다시 그가 덕종 즉위년 7월 26일 경술에 단행된 인사 명단에 보이니 장극맹蔣劇孟을 병부상서兵部尙書로, 홍빈洪賓을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이유섬李有暹을 공부상서工部尙書로, 김종현金宗鉉을 .. 2024. 2. 12.
곽원과 왕가도, 거란 선제공격을 주장한 매파(1) 시종 거란과 치고받기를 계속한 고려 현종 시대에 하도 고려도 당하다 보니, 거란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매파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곽원郭元과 왕가도王可道 역시 그에 속한다. 이 중에서도 왕가도는 이름이 재미있는데, 보나마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하는 도자 도덕경 구절에 따왔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저 둘은 현종시대 다른 저명한 관료들과 더불어 고려사 권94 열전 권 제7 제신諸臣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먼저 곽원을 본다. 그는 청주淸州 상당현上黨縣 사람이니 한명회 까마득한 고향 선배가 된다. 성종 15년(996)에 갑과甲科에 급제한 후에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현종(顯宗) 2년(1011)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가 되었으니 주로 문한 분야에서 활약했음을 본다. 현종 6년(1015)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2024. 2. 11.
충성심 하나로 정승까지 승진한 군인 지채문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지채문智蔡文은 오직 왕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지근거리에서 현종에 각종 간난에 처했을 때 혈혈단신으로 그를 옹위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 역사가 기록한 지채문 역시 그러해서 심지어 강감찬에 대해서도 각종 상상력을 동원해 영웅을 만들려하지만, 오직 지채문만큼은 한치 역사 기록과 어긋나지 않은 모습으로 시종일관 그린다. 진짜로 그랬다.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그는 그 직접 전장 반대편인 동북면을 지키는 임무가 주어졌으니, 이는 보나마나 여진을 방비하고자 함이었으니, 그런 와중에 서경이 함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왕명에 따라 동북면 병사들을 이끌고 서경 구원에 나섰으며, 각종 배신으로 곤란에 처하고 마침내 현종이 개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파천하자 말머리를 급히 돌려 왕을 따라 잡아, 끝까.. 2024. 2. 11.
참을 만큼 참았다, 정면으로 대드는 고려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소기한 성과를 내지 못한 거란은 게릴라전법을 채택해 고려를 괴롭히기로 방향을 바꾼다. 이른바 치고빠지기 전법이었으니, 그 동원하는 군사 성격에 따라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고려와 거란이 교통하는 거란 동방기지인 동경유수가 거란군을 소규모로 직접 동원해 고려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방법이 있고 둘째 여진을 동원한 간접 타격도 있었으니 둘은 공격 타점도 달랐다. 먼저 동경유수 기점 거란군 타격은 고려 기준으로는 서북면에 집중되었으니, 흥화진을 필두로 하는 지금의 평안북도 일대를 집중 타격했다. 반면 여진을 동원한 타격은 한반도 동해안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 타격 지점은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강릉과 경주가 타격지였으니, 이쪽이 아무래도 동해안 대도회였던 까닭이다. 현종 원년 이후.. 2024. 2. 10.
강민첨, 활쏘기 말타기도 못한 서생 출신 대장군 강민첨姜民瞻은 진주晉州 강씨라, 강감찬과 본관이 같고 무엇보다 활동연대도 겹친다. 또 같은 서생 출신으로 이른바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이끈 전쟁 영웅이다. 강민첨은 전쟁 영웅인 까닭에 고려사와 절요에는 죽은 시점이 명확히 보이니 1021년, 현종 11년 11월 12일 계미癸未가 그때라 이르기를 “지중추사知中樞事이면서 병부상서兵部尙書인 강민첨姜民瞻이 졸卒했다”고 해서 현직 상태에서 죽었음을 본다. 각종 사전에는 그가 광종 14년, 963년 진주에서 원윤 벼슬을 지낸 아버지 강보능姜甫能과 거창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 근거가 아마 진주강씨 족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려사 그의 열전에는 그가 목종(재위 997~1009) 시대에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록이 있을 ..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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