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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3

계획도시 한양 Hanyang as Planned City 계획도시 한양 한양은 1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설된 계획도시였습니다. 왕실과 전혀 연고가 없는 수도였던 한양은 처음부터 모든 기반 시설을 계획하여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때 고려한 것이 유교적 전통과 풍수지리였습니다. 유교적 전통에서 도읍을 건설할 때 중시된 것은 왕이 거주하는 궁궐, 종묘·사직과 같은 제사 시설, 관청 그리고 백성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입니다.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는 ‘좌조우사左祖右社 면조후시面朝後市’라는 중국 고대의 도읍 건설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양의 도시공간은 『주례』의 원칙과 함께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풍수지리 사상이 함께 적용되어 건설되었습니다. 경복궁은 국도풍수國都風水에서 한양 명당의 지맥이 흐르는 백악산 아래에 건설되었고, 종묘와 사.. 2023. 8. 19.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Establishing Joseon Capital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이제 이 땅의 형세를 보니 왕도를 삼을 만하다. 더욱이 조운漕運이 통하고 전국에서 거리도 균등하니 사람들이 사는 일에도 편리한 바가 있으리라.” 1394년(태조 3) 8월, 태조가 한양을 왕도로 삼고 한 말입니다. 이내 종묘·사직과 궁궐이 들어서니 비로소 임금의 교화敎化와 정령政令이 나가며, 왕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의 서울 한양으로 전국의 물산이 모여들었다 다시 흩어지고, 육로를 따라 갖가지 물품을 실은 말과 수레, 물길을 따라서는 배들이 모여들면서 한양은 조선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중국·일본·만주·유구에서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고, 또 그곳으로 사신들을 보내는 곳 역시 한양이었습니다. 외국의 물품이 한양으로 들어왔고, 조선의 물품이 한양에.. 2023. 8. 19.
[연재예고] 서울 사대문 안 지하 4미터의 비밀 짧은 원이 엄마 편지 연재를 마치고 인도 이야기로 돌아가리라 생각하셨겠지만 잠시 인도 이야기로 복귀는 양해를 구해야 겠습니다. 이유는 지금 인도에서 저희가 했던 작업의 연구 결과중 일부 출판이 마지막 큰 고비를 현재 넘고 있어서 그 작업에 필요 없는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인도 관련 연재는 현재 약 10회 분량 정도 남은 것 같은데 남은 분량은 모두 저희가 인도에서 거둔 연구 업적 관련이고 그 중 일부 내용은 현재 학술 출판이 진행중이라 지금 바로 김샘 블로그에 글을 쓰기 조금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간 완충할 수 있는 시간이 좀 필요 합니다. 아마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약 2개월 이후) 인도 연재는 다시 재개할수 있을 것입니다. -----------------.. 2019.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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