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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음(乙音)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의 족부(族父)로, 백제 건국 공신 중 한 명이다. 건국 직후 우보(右輔)가 되어 군사 분야를 전담하다가 온조 재위 41년 사망했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2년(서기전 17) : 3월에 왕이 재종숙부[族父] 을음(乙音)이 지식과 담력이 있으므로 우보(右輔)로 삼고 군사 업무를 맡겼다. …41년(서기 23) 봄 정월에 우보(右輔) 을음(乙音)이 죽자 북부의 해루(解婁)를 우보로 삼았다. 2018. 2. 23.
고문(高文)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7년(648) 9월에 노루 떼가 강을 건너 서쪽으로 달아나고 이리 떼가 서쪽으로 갔는데, 3일 동안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와서 침공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설]만철이 우위장군 배행방을 보내 보병과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이기니, 우리 군사들이 무너졌다. [배]행방 등이 군사를 내보내어 포위하였으나, 박작성은 산에 의지하여 요해처를 세우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우리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烏骨), 안지(安地) 등 여러 성.. 2018. 2. 23.
소부손(所夫孫)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7년(648) 9월에 노루 떼가 강을 건너 서쪽으로 달아나고 이리 떼가 서쪽으로 갔는데, 3일 동안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와서 침공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설]만철이 우위장군 배행방을 보내 보병과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이기니, 우리 군사들이 무너졌다. [배]행방 등이 군사를 내보내어 포위하였으나, 박작성은 산에 의지하여 요해처를 세우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우리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烏骨), 안지(安地) 등 여러 성.. 2018. 2. 23.
고임무(高任武)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6년(647) 겨울 12월에 왕은 둘째아들 막리지 임무(任武)를 당에 들어가 사죄하게 하니, 황제가 이것을 허락하였다. 2018. 2. 23.
임무(任武) ☞고임무(高任武) 2018. 2. 23.
고정의高正義 삼국사기 권 제21(고구려본기 제9) 보장왕 上 : 4년(645)…5월…이전에 막리지는 가시성(加尸城) 사람 700명을 보내 개모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이세적이 그들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 사람들은 종군하여 스스로 공을 세우기를 청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너희 집이 모두 가시[성]에 있는데, 너희가 나를 위하여 싸우면 막리지가 필시 너희 처자를 죽일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을 얻고서 한 집안을 멸망시키는 일을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황제는] 모두에게 양식을 주어 보내고 개모성을 개주라고 하였다. 황제가 안시성(安市城)에 이르러 군사를 보내 공격하니, 북부(北部) 욕살(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 욕살 고혜진(高惠眞)은 우리 군사와 말갈 군사 15만 명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였다. 황제가 근신.. 2018. 2. 23.
고혜진高惠眞 삼국사기 권 제21(고구려본기 제9) 보장왕 上 : 4년(645)…5월…이전에 막리지는 가시성(加尸城) 사람 700명을 보내 개모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이세적이 그들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 사람들은 종군하여 스스로 공을 세우기를 청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너희 집이 모두 가시[성]에 있는데, 너희가 나를 위하여 싸우면 막리지가 필시 너희 처자를 죽일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을 얻고서 한 집안을 멸망시키는 일을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황제는] 모두에게 양식을 주어 보내고 개모성을 개주라고 하였다. 황제가 안시성(安市城)에 이르러 군사를 보내 공격하니, 북부(北部) 욕살(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 욕살 고혜진(高惠眞)은 우리 군사와 말갈 군사 15만 명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였다. 황제가 근신.. 2018. 2. 23.
손대음(孫代音) 삼국사기 권 제21(고구려본기 제9) 보장왕 上 : 4년(645)…5월…이세적이 백암성(白巖城) 서남방으로 진공하고 황제가 그 서북쪽에 이르니, 성주(城主) 손대음(孫代音)이 몰래 심복을 보내 항복을 청하였다. [그 사신은] 성에 이르러 칼과 도끼를 내던지는 것을 신표로 삼고 “저는 항복하기를 원하지만 성 안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황제가 당나라 깃발을 사자에게 주면서 “정녕 항복하려고 한다면 이것을 성 위에 세워라.”고 말하였다. [손]대음이 깃발을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은 당나라 군사가 이미 성으로 올라온 것으로 여기고 모두 그를 따랐다. 황제가 요동성에서 이겼을 때에, 백암성이 항복을 청했다가 얼마 후에 후회하였으므로, 황제는 그들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에 노하여 군중(軍.. 2018. 2. 23.
고덕무(高德武)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수공(垂拱) 2년(686)에 [황제가]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삼고, 성력(聖曆) 초년(698)에 이르러 좌응양위(左鷹揚衛) 대장군으로 올렸다가 다시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하고, 안동의 옛 부를 통치하게 하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듬해에 항복한 왕의 아들 덕무(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삼았는데, 후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 원화(元和)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 2018. 2. 23.
덕무(德武) ☞고덕무(高德武) 2018. 2. 23.
고보원(高寶元)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수공(垂拱) 2년(686)에 [황제가]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삼고, 성력(聖曆) 초년(698)에 이르러 좌응양위(左鷹揚衛) 대장군으로 올렸다가 다시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하고, 안동의 옛 부를 통치하게 하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듬해에 항복한 왕의 아들 덕무(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삼았는데, 후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 원화(元和)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 2018. 2. 23.
보원(寶元) ☞고보원(高寶元) 2018. 2. 23.
안순(安舜)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함형(咸亨) 원년 경오년(670) 여름 4월에 이르러 검모잠(劍牟岑)이 나라를 부흥하려고 당나라에 배반하여, 왕의 외손 안순(安舜)을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 당나라 고종이 대장군 고간을 보내 [그를] 동주도(東州道) 행군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내어 그들을 토벌하니, 안순은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안승(安勝) 2018. 2. 23.
요묘(饒苗)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본기 下 : 27년(668) 가을 9월에 이적이 평양을 함락했다. [이]적이 이미 대행성에서 이기자, 다른 길로 나온 여러 군대가 모두 [이]적과 합쳐 진격하여 압록책(鴨柵)에 다달았다. 우리 군사가 맞서 싸웠으나 [이]적 등이 이를 패배시키고, 200여 리를 쫓아와서 욕이성(辱夷城)을 함락하니, 여러 성에서 도망하고 항복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글필하력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밑에 이르니, [이]적의 군대가 뒤를 이어 와서 한 달이 넘도록 평양을 포위했다. 보장왕은 연남산을 보내 수령 98명을 거느리고 흰 기를 들고 [이]적에게 나아가 항복하니, [이]적이 예로써 접대했다. 연남건은 오히려 문을 닫고 항거하며 지키면서, 자주 군사를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 2018. 2. 23.
오사(烏沙)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본기 下 : 27년(668) 가을 9월에 이적이 평양을 함락했다. [이]적이 이미 대행성에서 이기자, 다른 길로 나온 여러 군대가 모두 [이]적과 합쳐 진격하여 압록책(鴨柵)에 다달았다. 우리 군사가 맞서 싸웠으나 [이]적 등이 이를 패배시키고, 200여 리를 쫓아와서 욕이성(辱夷城)을 함락하니, 여러 성에서 도망하고 항복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글필하력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밑에 이르니, [이]적의 군대가 뒤를 이어 와서 한 달이 넘도록 평양을 포위했다. 보장왕은 연남산을 보내 수령 98명을 거느리고 흰 기를 들고 [이]적에게 나아가 항복하니, [이]적이 예로써 접대했다. 연남건은 오히려 문을 닫고 항거하며 지키면서, 자주 군사를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 2018. 2. 23.
신성(信誠)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본기 下 : 27년(668) 가을 9월에 이적이 평양을 함락했다. [이]적이 이미 대행성에서 이기자, 다른 길로 나온 여러 군대가 모두 [이]적과 합쳐 진격하여 압록책(鴨柵)에 다달았다. 우리 군사가 맞서 싸웠으나 [이]적 등이 이를 패배시키고, 200여 리를 쫓아와서 욕이성(辱夷城)을 함락하니, 여러 성에서 도망하고 항복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글필하력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밑에 이르니, [이]적의 군대가 뒤를 이어 와서 한 달이 넘도록 평양을 포위했다. 보장왕은 연남산을 보내 수령 98명을 거느리고 흰 기를 들고 [이]적에게 나아가 항복하니, [이]적이 예로써 접대했다. 연남건은 오히려 문을 닫고 항거하며 지키면서, 자주 군사를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 2018. 2. 23.
사부구(師夫仇)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본기下 : 26년(667) 가을 9월에 이적이 신성을 함락시키고 글필하력을 시켜 그곳을 지키게 했다. [이]적이 처음 요하를 건널 때 여러 장수에게 말했다. “신성은 고구려 서쪽 변방 요해지이니 먼저 그곳을 빼앗지 않고는 나머지 성들도 쉽게 빼앗을 수 없다.” 마침내 공격하니 성 사람 사부구(師夫仇) 등이 성주를 묶고 문을 열어 항복했다. [이]적이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니 16성이 모두 함락되었다. 2018. 2. 23.
남복(男福)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본기 下 : 25년(666) 왕이 태자 복남(福男)을 보내 당나라에 들어가 태산(泰山) 제사에 참가케 했다.☞고남복(高男福) ☞고복남(高福男)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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