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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薛聰)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배우지 않고도 도술(道術)을 알았고, 방언(方言)으로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므로 지금[고려]까지 학자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또 능히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고려]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마멸되고 떨어져나가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의 글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2018. 2. 14.
가실(嘉實)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설씨녀(薛氏女)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무관랑(武官郞)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사다함 열전 : (사다)함(含)이 전에 무관랑(武官郞)과 더불어 죽음을 같이 할 친구(死友)가 되자 약속했는데, 무관이 병으로 죽자 심히 슬프게 울다가 7일 만에 또한 죽으니, 그 때 나이 17세였다. 2018. 2. 14.
백결선생(百結先生) 생몰년 미상. 신라인. 자비왕 때 청빈 혹은 빈한하게 활동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백결이란 백 군데 누볐다는 뜻이니, 그의 행장을 주목한 별명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백결선생 열전 : 백결(百結)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해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해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릇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마음에 편치 않은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폈다. 어느 해 연말에 이웃 동네에서 곡식을 방아 찧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굿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 2018. 2. 14.
김수훈(金垂訓)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거인(巨仁)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원걸(元傑)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박인범(朴仁範)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물계자(勿稽子)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물계자 열전 : 물계자(勿稽子)는 나해니사금 때 사람이다. 집이 대대로 미미하였으나 사람됨이 기개가 커서 어려서부터 장대한 뜻을 가졌다. 그때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아라국(阿羅國)을 치기로 함께 꾀하자 아라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구원을 청하였다. 이사금이 왕손 날음(捺音)으로 하여금 이웃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게 하여 드디어 8국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이 싸움에서 물계자는 큰 공을 세웠으나 왕손에게 미움을 샀으므로 그 공은 기록되지 않았다. 어느 사람이 물계자에게 말하기를 “자네의 공이 대단히 컸는데 기록되지 못하였으니 원망하는가?” 하였더니 말하기를 “어찌 원망하리요?” 하였다.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왕에게 아뢰지 않는가?” 하니 물계자가 .. 2018. 2. 14.
도미(都彌)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도미 열전 : 도미(都彌)는 백제 사람이다. 비록 호적에 편입[編戶]된 하찮은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예뻤으며 또한 절조있는 행실을 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더불어 말하기를 “대저 부인의 덕은 비록 지조를 지킴을 앞세우지만 만약 그윽하고 어두우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유혹하면 능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하니, 대답하였다.“무릇 사람의 정이란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내와 같은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왕이 이를 시험하여 보기 위하여 도미에게 일을 시켜 잡아두고는 한 명의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거짓으로 왕의 의복을 입고.. 2018. 2. 14.
도비(都非)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눌최 열전 : 눌최(訥崔)는 사량 사람으로 대나마 도비(都非)의 아들이다. 2018. 2. 14.
눌최(訥崔) 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4 진평왕본기 : 46년(624)…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우리의 속함성(速含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暫城), 봉잠성(烽岑城), 기현성(旗縣城), 혈책성(穴柵城) 등 여섯 성을 에워쌌다. 이에 세 성은 함락되거나 혹은 항복하였다. 급찬 눌최(訥催)는 봉잠성, 앵잠성, 기현성의 세 성 군사와 합하여 굳게 지켰으나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였다.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눌최 열전 : 눌최(訥崔)는 사량 사람으로 대나마 도비(都非)의 아들이다. 진평왕 건복(建福) 41년 갑신(진평왕 46: 624) 겨울 10월에 백제가 대거 내침하여 군사를 나눠 속함(速含)[현재의 경남 함양군], 앵잠(櫻岑), 기잠(岑), 봉잠(烽岑), 기현(旗懸), 혈책(穴柵) 등 여섯 성을 포위 공격.. 2018. 2. 14.
헌창(憲昌) ☞김헌창(金憲昌) 2018. 2. 14.
수봉(秀奉)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록진 열전 : 록진(綠眞)은 성(姓)과 자(字)를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일길찬 수봉(秀奉)이다. 녹진이 23세에 비로소 벼슬하여 여러 차례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헌덕대왕 10년 무술(818)에는 집사시랑(執事侍郞)이 되었다. 2018. 2. 14.
한음(韓陰) 史記 朝鮮列傳 : 元封 2년(BC 109)…그 해 가을에 樓船將軍 楊㒒을 파견해 齊로부터 배를 타고 渤海를 건너게 하고 군사 5만으로 左將軍 荀彘는 요동에서 출격해 右渠를 토벌하게 했다.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해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相 路人과 相 韓陰과 尼谿相 參ㆍ將軍 王唊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將卒을 합해 전투가 더욱 맹렬해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韓]陰ㆍ[王]唊 ㆍ路人이 모두 도망해 漢나라에 항복했다. 路人은 도중에서 죽었다. 元封 3년(BC 108) 여름, 尼谿相 參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右渠를 죽이고 항복해 왔으나, 王險城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大臣 成已가 또 [漢에].. 2018. 2. 14.
성이(成已) 위만조선 말기인 우거왕 시대 대신(大臣)이다. 다만 판본에 따라 成已는 成己로도 읽힐 수 있다. 보통은 성이로 본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항을 보라.☞성기(成己) 2018. 2. 14.
삼(參) 史記 朝鮮列傳 : 元封 2년(BC 109)…그 해 가을에 樓船將軍 楊㒒을 파견해 齊로부터 배를 타고 渤海를 건너게 하고 군사 5만으로 左將軍 荀彘는 요동에서 출격해 右渠를 토벌하게 했다.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해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相 路人과 相 韓陰과 尼谿相 參ㆍ將軍 王唊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將卒을 합해 전투가 더욱 맹렬해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韓]陰ㆍ[王]唊ㆍ路人이 모두 도망해 漢나라에 항복했다. 路人은 도중에서 죽었다. 元封 3년(BC 108) 여름, 尼谿相 參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右渠를 죽이고 항복해 왔으나, 王險城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大臣 成已가 또 [漢에] .. 2018. 2. 14.
참(參) ☞삼(參) 2018. 2. 14.
정명(政明) ☞김정명(金政明) ☞신문왕(神文王) 2018. 2. 14.
김중흥(金重興) 신라 제40대 애장왕 이름인데, 이는 중국계 기록에 보이는 표기다. 국내 기록에서는 김중희(金重熙) 혹은 김청명(金淸明)이라 했다. 重興은 重熙와 글자 모양이 매우 비슷한데 둘 중 하나가 誤寫가 아닌가 한다.舊唐書 권 제199上 列傳 제149上 東夷 新羅國 : [貞元] 16년(800. 新羅 哀莊王 1)에 준옹俊邕에게 開府儀同三司 檢校太尉 新羅王을 除授했다. 司封郎中 兼御史中丞 韋丹에게 符節과 册命을 주어 보냈다. 丹이 鄆州에 이르렀을 때 俊邕이 卒하고 그의 아들 重興이 王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어 詔命으로 丹을 불러 들였다. 永貞 원년(805. 新羅 哀莊王 6)에 조서를 내려 兵部郎中 元季方에게 符節을 주어 보내어 重興을 王으로 책봉했다. ○ 元和 원년(806. 新羅 哀莊王 7) 11月에 宿衛로 와 있던 ..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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