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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67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친 영조와 정조 사실 영조와 정조가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칠 만한 수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필자 생각에는 이 양반들은 세종 정도 수준은 안 되는 양반들로 본다. 부지런하고 영명한 사람들임은 분명하지만. 숙종 때는 그렇다 치고, 영조와 정조는 많은 부분이 닮았는데 특히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치고 말이 경연이지 경연때는 신하들한테는 대충 묻고 자기가 가르치는 것이 태반이었고 책을 낼 때마다 서문을 갖다 붙였는데 전부 도통道統 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임한 것이 태반이었다고 본다. 정조가 그 정도가 좀 심했기 때문에 영조는 상대적으로 좀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 양반도 만만찮은 양반이었다. 따지고 보면 숙종, 영조, 정조의 이러한 성정은 필자가 보기엔 전부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명성황후가 아니다, .. 2024. 1. 26.
영감님들 지하철 영감님들 지하철 무임 승차문제로 말들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도 논의가 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지하철 무임승차로 그 분들이 좀 걸어다니고 운동하게 하는 것이 사회전체적으로 볼 때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노인들은 움직이지 않으면 병치레로 범벅이 된다. 차라리 전철을 타고 어딘가를 놀러도 갔다 오고 움직이게 해드리는 것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 양반들이 전철비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사회적 경비가 절감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지금보다 무임승차 개시 연령을 좀 올리고 (개인적으로는 65는 좀 빠르다고 본다), 러시아워 시간에는 무임승차를 막는 등 개선책은 필요하겠지만 노인.. 2024. 1. 26.
서인 세계관보다 더 문제인 황극론 흔히 18세기 집정 서인 세계관의 대척점으로 숙종-영조-정조대의 황극론을 세우는데, 이 황극론에서 탕평책이 나왔으므로 함께 이해하여 서술한다. 황극론은 흔히 정조를 지목하지만 그 사상적 연원을 따지고 보면 숙종 이후 정조 때까지 이 대가 쎈 군주 세 명의 치세에 서서히 발전하여 정조 임금 때 최종 완성되었다고 해도 좋다. 이 흐름의 이해에 있어 숙종과 영조도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숙종, 영조 치세에 보면 정조 때의 사상적 흐름의 단초는 이미 충분히 많이 보이고 있어 정조 때에 완성된 황극론의 흐름에는 그 상류에 숙종과 영조가 당연히 포진하고 있다. 이 주장을 옹호하는 입장에 따르면 정조는 정약용 등으로 대표되는 남인과 연대하여 소위 근대적 맹아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인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 2024. 1. 26.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조선 후기 언제부터인지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조선후기 지성사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있다. 필자도 조선후기의 흐름 자체를 이유 불문 부정적으로 보거나 자기 비하적 비판은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조선후기 지성사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느냐의 문제가 있겠다. 예를 들어 숙종대 이후 왕실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소위 황극에 대한 강조, 탕평책 등은 그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노론 중심의 세계관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자체는 근대적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오랜 유교의 역사에서 흘러오던 두 개의 큰 세계관 중 하나는 이쪽이 잡고 다른 하나는 저쪽이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실학-. 이른바 중농학파의 토지개혁은 지나친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2024. 1. 26.
고려거란전쟁 시기에 대한 생각 이 시기는 무신정변 이전이다. 고려 거란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 이미 고려는 전시과 제도 체제 하에 있었다. 고려거란전쟁에 동원되는 그 많은 고려군은 뭘 먹고 살던 사람들일까. 조선처럼 병농일치 병사들일까 아니면 직역이 세습되는 병사들일까. 고려는 무과도 없었다는데 무과가 있었던 조선시대 군인보다도 더 잘 싸우는 저 고려의 무인들은 도대체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땅에서 솟았을까. 마지막 의문-. 고려거란전쟁에서 저렇게 싸우는 군인들이 결국 무신정변을 일으켜 문신들을 싹슬이 해버린 군인들의 직계 조상일까? 만약 그렇다면 거란과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고려의 군인들이 불과 백여년 후에는 그 칼을 문신들에게 돌려 고려 정부를 절단 낸 셈이다. 거란과 고려의 통쾌한 전쟁사 이면에 저 군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한 .. 2024. 1. 26.
우리가 아는 밥맛은 쇠솥이 나오면서 나왔다 필자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곡물취사는 초기에는 찌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찌는 방식으로 취사를 해 보면 쌀과 다른 잡곡의 맛이 별차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쌀의 단맛도 덜하고 특히 쌀 도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현미로 밥을 찌게 되면 수수밥이나 기장밥과 별차이 없다. 우리가 아는 쌀밥 맛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쌀밥맛은-. 철제 솥이 나온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 곡물을 솥안에 직접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불을 줄여 긴 시간 작은 불로 뜸들이는 우리가 아는 방식의 밥 짓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다른 곡물로 차별성이 생기게 되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이런 경우에는 해먹어 보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알겠는가? 해 먹어 보니 그렇더라 그 이야기다. 특히 쇠솥이..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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