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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219

북한산 인수봉 선각마애불 2주 전쯤 국립공원공단에서 북한산 국립공원 내 역사문화자원 현장조사에 동행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지난해 문화재52권에 실린 내 논문 를 보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겨우 논문 한 편으로 전문가로 자문을 요청한다기에 완곡히 거절하려 했는데, 북한산을 워낙 사랑하기도 하거니와 인수봉 마애불을 간다는 말에 냉큼 가겠다고 했다. 그간 장마철이라 오늘 일정을 걱정했는데, 어제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좋았다. 처음 찾은 곳은 인수야영장 근처 쓰러진 석불입상이다. 아마도 쓰러지면서 머리는 없어진듯 하고, 아래부분은 대좌에 꽂았던 촉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뒷면까지 옷주름을 신경써 조각한 것으로 보아 고려 초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최근 경주 남산 약수곡에서처럼 발굴해서 불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 2020. 7. 16.
묵호(墨湖) : 검은 바다 묵호(墨湖) : 검은 바다 묵호 지명은 조선 현종때 강릉부사 이유응이 하사했다고 전한다. 검은새와 바위가 많아 오진이라 부르던 포구를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에서 멋진 경치를 보며 좋은 글씨를 쓰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로 묵호(墨湖)라는 이름을 줕여주었다고 한다.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으나, 묵호항에서 묵호의 역사가 집약적으로 보이는 듯 했다. 저 멀리 비 온 뒤 피어오르는 안개 속 두타산. 보이진 않지만 두타산에는 대표적인 명승이자 국민관광지 1호인 무릉계곡과 유서깊은 사찰 삼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벚꽃천지 같던 시절의 흔적인지, 항구의 아래쪽에 막 들어온 듯 보이는 오징어잡이 배 한 척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동해안 제1의 .. 2020. 7. 12.
학예연구사, 학예사, 연구사 [학예연구사, 학예사, 연구사] (오늘 다시 지방직 학예연구사가 화두에 올라 그무렵인 2018. 7. 4. 페이스북에 내가 썼던 글을 옮겨 왔다.) 1. 이미 선배 학예사가 있었으므로, 하계사니, 해설서니 하는 얘기는 다행히 듣지 않고 시작했다. 2. 지자체에서는 과장, 팀장 등의 보직이 없으면 주무관, 실무관으로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주사님”이란 말을 쓴다. 저 단어가 도통 이해되지 않던 시절, 선생님이란 호칭을 썼다가, 지들은 뭐 그리 특별하냐고, 지들끼리 선생님이냐고 수근대더라. 그래도 난 우리끼리는 아직도 선생님이라고 한다. 3. 지내다 보니 차라리 “주사님”이라 불러주면 다행이더라. 그냥 “OO야” 이름을 막 불리던 사람이 부지기수. 서른, 마흔 넘은 사람들 이름을 막 부르는 문화가 너무 낯설.. 2020. 7. 3.
큰 가락 마을 : 대가리(大加里) 큰 가락 마을 : 대가리(大加里) 충청북도 단양군은 산지가 많고 척박한 곳이다. 인구 3만명 정도의 작은 소도시이지만, 삼국시대 각축장이었을만큼 교통.군사 요충지였다. 단양 적성비로 알려진 진흥왕 순수비를 보면 신라가 소백산을 넘어 북방으로 진출하기 위해 애썼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적성면의 끄트머리 동네에 외갓집이 아직 남아 있어 식구들끼리 오기도 하고, 소백산 등산도 종종 다녀서 1년에 몇 차례 오곤 한다. 외갓집이 있는 마을은 하원곡리인데 중간에 지나가는 마을 이름이 “대가리”다. 어릴 때는 이름을 듣고 엄청 웃었는데, 오늘 지나가는 길에 자세히 보았다. “대가리(大加里)”는 지형이 큰 가락처럼 생겼으므로 한 가래기 또는 대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 유래비에는 원래 가차촌(駕次村)이었.. 2020. 6. 27.
[꽃병집 딸내미 이야기-후기] [꽃병집 딸내미 이야기-후기] 어릴 때 주변 사람들은 아빠를 ‘꽃병집 이사장’ 내지는 ‘어이! 꽃병!’ 이렇게 불렀다. 아빠는 누가 뭐래도 삼양동 꽃병집 사장님이었고, 나는 꽃병집 딸내미였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아빠를 꽃병집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아마도 꽃병 공장을 그만둔지 30년이 넘었고, 다른 일을 했던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으나, 아빠의 2-30대를 꽉 채웠던 그 시절이, 왜 내가 더 그리운건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아빠에게 그 시절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평소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분이라 물어봐도 별 다른 말씀이 없다. 그치만 일전에 썼듯이 얼마 전까지 집에 최후의 꽃병이 남아 있.. 2020. 6. 26.
올라야 보이는 것 산에 오르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높은 곳에 올라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특히 비 온 다음 날, 청명한 날 산에 오르길 권한다. 차를 타고 올라도 좋고, 걸어도 좋다. 오늘처럼 비 온 다음날,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엔 더워도 산에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202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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