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장준희 박사 10주기를 맞아 그의 족적을 정리하며 그를 회고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의 유저가 사진집 형태로 나왔고 그의 모교 한양대학교 부설 박물관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했으니
나는 고 장 교수와 친분이 꽤 있고 존경했으므로 그 자리를 가야 했으나 마침 외국 주유 중인 관계로 고인께 결례를 하고 말았다.
조금 전 다른 일로 다른 주제를 검색하다가 10년 전 황망히 그가 우리 곁을 떠날 때 2017년 9월 12일 홍승직 선생이 쓴 애도문이 걸려
그 글을 전재한다.
관련 첨부 사진은 그의 유고를 정리 출판하고 기념행사를 주최한 최진 선생과 한양대박물관에 비롯한다.
구척 장신 장 박사가 무척이나 그립다.
[고 장준희 교수 부음을 접하고]
몇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느닷없이 결성된 학회에서 장준희 박사를 처음 알았다.
그러므로 코가 비뚤어지도록 함께 술을 마셨다거나, 밤새 놀았다거나, 함께 여행을 했다거나 하는 추억을 쌓는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오늘 느닷없이 뜻밖에도 장 교수 부음을 접했다.
간암을 앓았다고 한다.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장 교수는 국내 보기 드문 중앙아시아 전문가였다.
게다가 철저히 현장을 뛰어다니는 분이었다.
박사博士라는 말이 무색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좁은 영역 책장만 넘기는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현장을 누비는 그 분의 자세에,
내가 비록 표현하진 못했지만, 경탄과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말 그대로 박사였다.
둘째, 어쩌면 그리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조용히 삶을 마칠 수 있었을까!
나 같으면 억울하고 원통한 나머지 동네방네 소문내고 광고해서 위로받으려고 했을텐데...
필시 광활한 초원을 누비던 기개가 그토록 세상을 관조하고 초탈하는 평정을 가질 수 있게 했으리라!
장준희 교수가 그동안 올렸던 사진과 소개는 우리로 하여금 중앙아시아 초원을 동경하도록 했다.
언젠가 반드시 안내하리라는 약속도 했었다.
지금 거론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지만, "우즈벡에 가면 김태희가 양을 치고 이효리가 밭을 간다"는 그의 어록은 아직도 내 마음을 달뜨게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유종원은 그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여온의 죽음에 다음과 같이 제문을 시작했다.
"아아, 하늘이여! 군자에겐 무슨 잘못이 있길래 하늘은 진정 그들을 원수로 여기는가? 백성에겐 무슨 죄가 있길래 하늘은 진정 그들을 원수로 여기는가? 총명하고 정직하고 행실이 군자다운 사람은, 하늘이 꼭 그 죽음을 앞당기는구나. 도덕과 인의(仁義)를 갖추고 백성에게 뜻을 둔 사람은, 하늘이 꼭 그 몸을 먼저 데려가는구나. 내 본디 저 푸르른 하늘이 믿을 것도 없고 가없는 하늘이 신령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으되, 지금 "여온"의 죽음을 맞이하여, 원망은 더욱 깊어지고 미움은 더욱 심해져서, 다시 하늘을 부르며 하소연하는 것일 뿐이라. 하늘이여, 애통하다!
여기서 "여온"을 "장교수"로 바꾸고 싶은 것이 지금 내 심정이다.
언젠가 반드시 중앙아시아 초원에 가서 그가 남긴 발자국을 꼭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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