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학문세계 윤리를 논할 때 흔히 드는 사례가 표절이라, 이 표절이야 그 세계 중대 범죄라는 문제의식이라도 있지,
어디서 의뢰 받고 돈 받아 쓴 논문이 아예 그런 의식조차 없이 실로 광범위하게 자행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는 기자였다. 그 일을 떠난 지금도 다른 형태로 직간접으로 언론을 하거니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 혹은 누군가한테서 돈을 받고서 누구를 위한 글을 쓰지는 않는다.
물론 모르고 당할 수는 있지만, 내가 의식하는 그 어떤 매명은 하지 않는다.
왜?
그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 업계 불문률이 있고, 그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까닭이다.
그런 글은 사람을 죽인다. 그것이 아닌 글도 사람을 죽이는데, 하물며 저런 기사임에랴?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지조 있는 언론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도리 윤리를 이야기할 뿐이다.
한데 저 직업적 학문세계를 볼짝시면, 저와 같은 일에 그 누구도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기이하기만 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자리에 초대 받아 가서 발표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런 자리에서 발표한 글을 논문이랍시며 투고하는 일을 쪽팔려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그런 자리에 왜 내가 부름을 받지 못하는가 분통해 할 뿐이다.
내가 직간접으로 간여하는 이 업계에서 볼짝시면 저와 같은 양태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데가 무슨 유적 사적 지정을 위한 지자체 주최 각종 요란한 학술대회가 있고, 어떤 인물 혹은 특정 단체 현창을 표방하는 학술대회가 있다.
더구나 이런 자리는 거의 예외없이 특정한 학술연구를 표방하는 단체가 공동주최하는 형식을 빌리는 모습을 목격하는데,
그런 자리에서 발표된 글은 거의 예외없이 그 직후 그 단체 기관지에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게재 탑재된다.
이는 학문하는 본연의 자세를 저버린 곡학아세다.
돈 받고 쓴 기사랑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돈 받고 쓴 기사야 지탄 대상이라도 되지만, 돈 받고 주최한 학술대회, 돈 받고 쓴 글은 지탄조차 되지 않으니 이런 도덕 불감증이 나로선 기이할 뿐이다.
물론 단순히 돈을 대가로 받는다 해서 그런 글쓰기가 다 저리 매도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 혹은 대의는 더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믿는다.
일언이폐지컨대 주문 생산한 글은 모조리 쓰레기다 라는 선언은 이래서 다시금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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