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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관자管子, 고대중국의 그랜드 디자인

by taeshik.kim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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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2 11:34:33
<고대중국의 그랜드 디자인 '관자'>
국내 최초 완역본 선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7년을 기점으로 서울 송파구 소재 고대 평지토성인 풍납토성이 본격 발굴되기 이전, 이곳이 한성漢城 도읍기 백제의 왕성王城 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결정적인 근거 중 하나가 한강이라는 큰 강 바로 인접 지점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조건이었다.


관중管仲



툭하면 홍수를 만나는 곳에 어찌 한 나라의 도읍을 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반론이 실로 그럴 듯하게, 그것도 이 분야 직업적 학문종사자들 사이에 통용된 적이 있었다.

전국시대에 완성된 '관자管子'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릇 도읍은 큰 산 아래가 아니라면 큰 강 가에 세워야 한다."(凡立國都, 非於大山之下, 必於廣川之上)

관자 중에서도 '승마乘馬'라는 제목이 달린 편篇 첫 머리에 보이는 이 말 한마디로 홍수 위험 운운하는 주장이 얼마나 비학술적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승마'는 말타기가 아니라 '헤아림' 혹은 '계획'이라는 뜻)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고대 동아시아 사상사, 특히 제왕학을 논할 때 흔히 외유내법外儒內法이라 해서 제왕은 겉으로는 유가儒家인 척하며 툭하면 인의仁義를 들먹였으나, 실제는 엄격한 법 집행과 이를 통한 부국강병을 추구한 법가法家에 절대적으로 기댔다는 말이 그럴 듯하게 통용된다.

하지만 유가에 속하는 텍스트들인 논어와 맹자, 순자를 아무리 읽어도, 심지어는 법가사상의 남상격들인 상앙의 상군서商君書나 한비의 한비자韓非子를 뒤져도, 도대체 국가를 어떻게 조직하며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구할 수 없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고대 중국이 내놓은 답변서가 관자라고 할 수 있다.

관자管子란 제 환공을 도와 그를 중국을 호령하는 패주覇主로 만들었다는 정치가 관중管仲을 지칭한다.

하지만 관자라는 텍스트는 공자보다 200년가량이나 앞선 관중을 가탁假托(이름만 빌림)했을 뿐이며, 실제는 전국시대에 관중을 추종한 인물들이 만들어낸 책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약용의 저서 이름에도 들어간 '목민牧民' 편을 시작으로 현존 관자는 전한 말기에 유향劉向이라는 사람이 책을 정리할 당시만 해도 86편이었으나, 이후 11편이 망실되어 지금은 75편
만이 전한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유명한 격언의 출처이기도 한 관자는 도읍을 어떤 곳에 세워야 하는지를 비롯해 중앙정부는 어떻게 조직하며, 그 조직이 맡아야 할 사무는 각각 무엇인지, 나아가 지방은 어떻게 편제하며, 세금은 어떻게 매겨 어떤 방식으로 징수해야 하는지를 논한다.

물론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 나아가 그를 대리한 관료들이 갖춰야 하는 덕목도 빠뜨리지 않는다.

국가를 조직하고 다스리기 위한 '그랜드 디자인'이기에 관자는 사상적으로는 잡식성을 보인다.

관자가 말하고자 한 제왕학의 골격은 전한 말기가 되면 '주례周禮'라는 텍스트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관자가 백화점이라면, 주례는 그것이 취급한 잡화들 중에서도 정부조직법만을 떼어내 훨씬 일목요연하게 다듬어 놓은 전문코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자는 그 어느 텍스트보다 주례 등장 이전, 고대 중국이 구상한 국가의 그랜드 디자인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문헌임에도 이제야 관자 완역본이 선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발췌본만 두어 종 있었다.)

노자 번역본이 50여 종, 논어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번역본 수량을 자랑하는 우리의 고전 편식증 실상을 이번 관자 완역본이 여실히 보여준다.

김필수·고대혁·장승구·신창호씨가 함께 옮긴 완역 '관자'(소나무 펴냄)는 하드 커버와 페이퍼 백 두 종류로 나왔다.

원문 또한 '장자'의 내·외·잡편을 합친 분량에 미칠 정도로 방대하므로 번역본 분량 또한 색인을 포함해 1천62쪽에 달한다. 3만8천원(보급판 기준).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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