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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인더스 문명

인도 고고학 조사 이야기 (4): 왜 우리와 무관한 인도를 연구해야 하는가

by 초야잠필 2018.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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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이 글 연재 시작할때 앞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로 남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었다. 

요즘 인도에 대한 여행기도 많고 실제 인도를 경험할 수 있는 여행 패키지도 많아 인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하는 이야기는 사실 내가 이 글을 남기는 목적은 아니고 그런 면에서는 이 연재는 대단할 것도 없다. 우리 연구실 친구들은 지난 7년 동안 인도를 거의 한해도 빼지 않고 들어갔지만 그 흔한 타지마할 한 번 가질 못했다. 


오창석군은 아잔타 엘로라 석굴 지근거리인 곳에서 연구를 수행했지만 결국 그 곳을 구경하지 못하고 나왔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발굴장 외에 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것이라곤 델리, 뭄바이, 푸네, 콜카타 등의 대도시와 발굴장이 위치한 시골 촌구석 뿐이다. 이미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별로 희귀할 것도 없는 정보다. 


매우 불행한 역사지만 인도 근대적 학문은 식민지시대 이 나라에 진출한 유럽인들이 시작했다. 고고학과 의학도 마찬가지이다. 이 연재 주제가 되는 인더스문명도 영국인이 처음 발견해서 학계에 보고했다. 


이 보고 이전에는 인도인들은 인더스문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러한 장구한 연구의 역사가 아직도 서구권-유럽과 미국 학자들-에는 흘러 내려온다. 


인도에서야 요즘들어 거의 불가능해 졌지만 같은 인도대륙의 파키스탄 같은 경우 아직도 인더스 문명 유적에 대한 발굴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는 미국 학자가 있다. 외국인이 연구를 주도하는 이런 사례는 이 지역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보다 부흥하게 되면 점점 줄어들겠지만 여하튼 "인도를 연구한다"는 것에 대해 서구인들의 경우 아무런 심리적 저항감이 없는 것은 사실하다. 그들 자신과 별 상관도 없는 나라의 역사인데도.  


인도를 연구하다 보면 이런 다국적 연구자 그룹은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인더스 문명 유적지를 함께 답사했던 이 연구자 그룹에는 한국, 인도, 미국의 3개국 연구자가 섞여 있다. 2012년. 인더스 문명 유적 조사 중. 



같은 아시아에서도 일본 학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들도 2차대전 이전 여러 가지 이유로 인도를 연구한 역사적 경험이 있고 그 전통은 아직도 그들에게 내려온다. 유럽과 미국 학자들 정도는 아니지만 요소요소 중요한 건널목마다 일본 학자들은 인도에서도 꼭 눈에 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왜 "인도문명을 연구하는가" 하는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경제적으로 풍요해진 중국 학자들도 돈을 싸들고 인도로 들어가 발굴 한번 해보겠다고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일을 보면 "우리와 무관하면" 연구할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우리 풍토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중국의 경우 외부와 밀접하게 접촉해야 한 그들 역사적 경험이 이러한 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원하게 하는 경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본다. 


과거 그들 조상들이 그러했으니 그들도 큰 회의 없이 이런 연구 동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왜 우리와 관계가 없는 문명을 연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서구와 일본 연구자들은 자신들과 무관한 문명에 대해 아직도 연구하고 있을까? 중국은 그 자신 고대문명의 발상지인데 왜 굳이 인도 연구에 끼어 들어가려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11년. 인도 학회에서. 


이에 반해서 우리는 한반도를 조금만 벗어난 연구를 수행해도 연구자들은 항상 "왜 우리와 관계 없는 연구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시달려야 한다. 연구비도 거의 지원 받지 못한다. 어렵사리 해외에서 연구하고 학위를 받아 돌아온 연구자들은 개밥의 도토리 취급을 받아 몇년 동안 살아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결국 다른 주제로 전환하거나 연구 자체를 포기한다. 생존을 위해 해외 연구 주제를 우리 역사와 어떻게 해서든 연결 시키려는 무리한 시도가 곳곳에서 보이게 된다. 인도를 예로 들자면 인도 문명 자체를 놓고 세계 각국 연구자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은 우리 학계 풍토가 편협해서라기 보다 우리 역사가 해외에서 제대로 연구를 수행해 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던 점에 이유를 먼저 물을 수 밖에 없다. 외부에 대한 사색과 고민이 제대로 있던 경험이 거의 없으니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엄청나게 발전한 듯하지만 조선시대 우리 지식인의 방어적이고 피동적인 세계 인식에 우리가 과연 얼마나 더 걸어나왔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해외 학회를 나가보면 항상 느끼는 것은 "한국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국제적으로 거의 관심이 없는 주제임을 안다. 한국 그 자체에 대한 세션을 만들면 거기 모이는 사람이라곤 한국인 뿐이다. 왜 굳이 국제학회에서 세션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은 한국이냐 아니냐, 인도냐 아니냐가 아니다. 인류 보편의 관심사와 주제를 궁구하다 보니 그 대상으로 한국이나 인도를 택할 뿐인 것이지, 어느 나라 역사냐 이는 연구자에게 큰 의미가 없다. 인도에는 한국사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연구 주제,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로서 지닌 여러 논쟁의 단초가 있으므로 그곳에 가서 연구하는 것이다. 


서구와 일본, 중국 연구자들은 바로 그런 목적으로 오늘도 그곳에서 바글대고 있는 것이다. 학술적 야망이 있는 연구자들은 오늘도 인류고대문명 발상지를 찾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다른 나라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류문명사 연구라는 큰 주제에 같이 뛰어들어 논쟁을 벌이고 싶다면, "외부에 대한 관심"이야 말로 21세기 한국학계의 화두가 되지 않으면 안되겠다. 


인도에도 거석 문명이 있다.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이렇게 모여 이 문명을 이야기 한다. 한국의 관련 연구자들도 이들과 함께 논쟁하고 대화하며 보다 큰 그림을 그리게 되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대가들이 한국에서 앞으로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인도 학회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연구실이 당분간 아무리 날고 뛰며 설친들 인도에서 어마어마한 성과와 업적을 남기라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우리 출발선이 너무 뒤쳐졌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학계 자체가 문명발상지에 대한 경험이 너무 없다 보니 다른 나라 연구자들에 비해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인도에 다녀오고 나서 한국기업을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악평보다 더 나쁜 것이 아예 평이 없다는 점인데, 그런 무에 가까운 선입견을 딛고 인도에서 차를 파는 기업, 스마트 폰을 파는 기업. 그들은 나보다 백만배 더 위대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우리 연구실이 인도에서 작업한 과정과 결과물은 아마 매우 보잘 것 없고 미미할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시작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미흡한 성과를 토대 삼아 미래에는 우리 젊은 학자들이 다른 나라 연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인류문명사를 직접 대면한 연구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적어도 그들이 인도에 들어가면 한국 학자가 여기서 연구를 한 것은 최초라며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학문 수준이라는 것은 그렇게 앞서 간 사람 어깨를 밟아가며 발전하는 것이다. 

최근 인도라는 나라의 풍물,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점점 늘지만 정작 그곳 학자들이 어떻게 연구를 수행하는지, 어떤 학회가 있는지, 인도에서 우리가 연구를 직접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회에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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