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지금까지 우리 연구실이 인도 연구에 진입하게 된 우여곡절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 하였다. 물론 세세하게 이야기 하자면 더 이야기 할 거리야 많겠지만 이쯤에서 건너뛰고자 한다. 어차피 이런 고생을 했다 저런 난관이 있었다 등 인도 들어가면 뻔한 고생 경험의 반복이라 여기서 그에 대해 더 부연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어쨌건 요약하면 인도 교수들도 그 후 몇 명 우리 연구실을 방문했고 우리 연구실 사람들이 인도 현지 발굴현장을 계속 방문하여 시료를 채취하는 등 대체로 서로간에 그런 탐색전이 계속 되며 이해를 증진시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연구실과 데칸대 고고학과가 함을 합쳐 앞으로 다가오는 발굴때는 뭔가 좀 굉장한 일을 같이 해 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 결과가 2013년 11월, 서울대 법의학연구소와 데칸대 고고학과 사이에 맺어진 MOU였다. MOU라는 것이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지키지 않겠다고 작정하면 휴지나 다름 없는 그런 합의문이지만 우리의 경우 비교적 실속있게 성과를 이로부터 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11월. 서울대 법의학연구소와 데칸대 고고학부가 맺은 MOU.
그렇다면 어떤 연구를 과연 함께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우리의 첫 목표는 인도를 들어간 이상 인더스 문명 유적에 대한 합동 조사였다. 한국문화와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불교, 그리고 거석문화도 대상이 될수 있었지만 인더스 문명 유적의 무게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인도로 몰려드는 거의 모든 서구 학자들의 관심사는 인더스 문명 자체에 쏠려 있었다. 우리도 그 흐름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인더스문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물론 고고학자도 아닌 내가 이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장황하게 할 생각은 없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위키피디아만 살펴봐도 잘 아실수 있을 것이고-.
https://en.wikipedia.org/wiki/Indus_Valley_Civilisation
흔히 인더스문명은 파키스탄 땅에서 번영한 것으로 알고 인도에는 거의 유적이 없는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던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파키스탄 땅에서 보다 인더스 문명이 크게 번영한것은 사실이지만 이 문명권의 동쪽은 지금 인도땅에서 길게 뻗어 있어 인도 서북부 지역을 발굴하면 인더스문명 유적이 많이 나온다. 그런면에서 인더스문명 자체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이 공유한 문명이라고 보는것이 타당 하며 이 때문에 인도에도 인더스문명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바글바글하다.
각설하고 더 자세한 내용은 후일의 김용준 박사의 설명을 기다려 보기로 하고-.
인더스 문명 전성시대 (지금부터 4,500년전)의 대도시 유적 이야기를 해보자.
아래 그림에는 지금까지 규명된 인더스문명의 판도가 표시되어있다. 인더스 문명의 판도는 무척 넓어서 같은 시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합친것 보다 더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 판도안에 고도의 농경을 기반한 기라성같은 유적들이 펼쳐져 있는데 이 유적의 크기가 모두 같지 않다. 시골 촌락 정도 크기의 유적에서 town으로 분류되는 유적,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살던 대도시 유적까지 존재했는데 자세한 양상은 아래 그림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인더스문명 전성시대의 하라파 문명과 대도시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그림).
일반적으로 이 시기 인더스문명 판도 안에는 최소한 대도시 5군데는 확인된다고 한다. 저명한 인더스문명 학자인 케노이어 교수의 책을 보면 이런 대도시는 면적이 대략 80-250 헥타르 정도 되며 인구는 5만명을 웃돌기도 했다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지명으로 이 다섯개의 대도시는 모헨조다로, 하라파, 돌라비라, 라키가리 그리고 간웨리와라이며 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 인더스문명 대도시의 발전 수준이 얼마나 대단했던가 하는것은 아래 NHK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중에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는 파키스탄에 있고 돌라비와 라키가리는 인도땅에, 그리고 간웨리와라는 우리의 DMZ 처럼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현재 발굴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재 다섯군데 대도시 유적 중 발굴이 가능한 곳은 네군데 인데 이 중 3곳 (하라파, 모헨조다로, 돌라비라)은 어느정도 발굴이 끝난 곳이다.
현재까지 발굴 가능한 지역에 있지만 거의 발굴이 되지 못한 곳은 단 한 곳. 라키가리 유적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Rakhigarhi
나는 인도를 처음 들어갔을때부터 신데교수가 이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입에 달고 다니다 시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유적이 사실상 마지막 남은 인더스문명 대도시 유적인 만큼 신데교수는 스스로의 손으로 은퇴전에 한번 제대로 발굴 해보고 싶어했다. 나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인더스 문명의 소위 "대도시"라는 것이 어느정도인지 실견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그 위용이나 학술적 가치 등을 실감할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미 발굴된 다섯군데의 인더스문명 대도시 유적 중 하나인 인도 구자라트 주에 있는 "돌라비라 유적"을 실견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2012년).
위에 링크된 돌라비라 유적 구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돌라비라 유적은 인도 서쪽 바닷가에 면해 있다. 우리로 치면 강화도 같은 자연환경이라고 보면 되겠다. 섬 안에 대도시 유적이 존재하는데 아마도 외부와 해양을 통해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 지도를 보면 돌라비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호수를 가로질러 들어가는 것 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이건 호수는 아니고 바다가 갇혀 만들어진 염호이다. 실제로 이 유적지로 들어갈때 말라버린 염호를 구경하면서 들어갈수 있는데 하얗게 말라버린 마른 호수가 장관이다.
돌라비라 유적으로 들어가는 마른 짠물 호수 Rann of Kutch. 하얗게 말라버린 소금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 짠물 호수를 통과하면 돌라비라 유적으로 들어간다. 여기는 이미 발굴이 종료되어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교통이 복잡해서 그렇지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만 있다면 당신도 들어가 볼 수 있다.
나는 이 유적을 처음 접한 후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4,500년전에 도대체 어떻게 이런 대도시를 만들수 있는가 하는 놀라움이다. 최소한 수만 명은 살았을 법한 대도시 구획 주변을 거대한 저수지가 감싸고 있다. 복원된 도시 유적은 만들어 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더 놀라운것은 이처럼 대단한 도시를 만들었는데도 유적지 주변에 변변한 왕릉하나 나오는게 없다. 이 대도시를 만든 사회가 제대로 된 계급사회였는지도 아직 잘 모른다. 이 정도 유적지라면 우리나라라면 대제국의 수도를 찾았다고 난리가 나겠지만 인도 학자들은 하라파 문명이 아직 국가단계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돌라비라 유적의 저수지. 이런 저수지가 도시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엄청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임.
돌라비라 유적에 대한 유투브 영상 (이 영상은 반드시 보시기 바랍니다)
저수지와 도시 성벽
도시 구역에서. 김용준 박사
5천년 전의 배수관
저수지 안에서
돌라비라 유적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이 분야 전문가인 김용준 박사의 손을 빌기로 하자.
어쨌건 이 유적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내게 신데교수는 인도 안에 남아있는 "라키가리 유적"은 이것보다 더 크고 손도 안댄채로 아직 남아 있다고 이야기 했다. 만약 이것을 발굴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같이 해보자. 라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다. 그는 라키가리 유적의 공동묘지 자리를 발굴하게 된다면 우리 연구실 기법을 이용하여 조사할 수 있다면 서로간에 윈-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제안에 감사 했지만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연구실에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 반신 반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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