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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일본 조선 어느 쪽이 좋은가?" 윤치호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by taeshik.kim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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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4.27(일) 오후 늦게 개모리와키 개성경찰서장을 방문했다…철도공원 벚꽃이 만개해 절정에 달했다. 불과 7, 8년 전 만 해도 이곳은 나무도 없고 보기고 흉한, 삭막한 곳이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이곳을 대단히 매혹적인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만약 이 동산에 신령이 있다면, 어디 한 번 좀 물어보자. 일본 정권과 조선 정권 중에서 어느 쪽이 좋으냐고. 

김상태 편역, 《윤치호 일기 1916~1943)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시기》, 역사비평사, 2001.2, 107쪽. 
 

 
이 물음이 왜 여전히 유효한가? 망국론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주 많은 이가 윤치호 일기를 오독한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 

저 물음 말할 것도 없이 조선왕조 혹은 대한제국은 망할 만하니 망했다는 넉두리며 비아냥이며 통렬한 비판이다. 차라리 잘 망했다는 선언이다. 그러면서 묻는다. 

일본 통치랑 조선왕의 통치 어느 쪽이 좋으냐 묻는다. 말할 것도 없이 윤치호는 전자에 손을 든다. 조선왕조 혹은 대한제국 체제로는 이런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윤치호의 저런 물음을 곡해하는 데서, 다시 말해 윤치호는 골수까지 친일파다, 그래서 나쁜 놈이다는 딱지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면, 판단력 실종이 일어난다. 조선왕이면, 대한제국 황제면, 압제해도 좋고 못 살게 해도 좋고, 오직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실책과 탄압과 수탈이 용납되는 사관으로 발전한다. 

아니, 그런 판단력조차 생략해 버리기에 고종은, 대한제국은 시종일관 신민을 위해 그렇게 불철주야 노력했는데 강포한 왜놈들 때문에 그를 향한 근대 국가 건설의 꿈은 낙마하고 말았다는 몰상식이 스며든다. 고종 띄우기, 그 마누라 민비 동정하기, 대한제국 과대포장을 주창하는 무수한 글이 그 판단력 상실의 직접 사산아다. 

물론 그렇다 해서 우리가 윤치호의 저런 시각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설혹 저런 말이 어느 정도, 아니 상당히 타당하다 해도 괜시리 기분 나쁜 것만은 어찌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하긴 저 말은 정곡을 찔렀기에 아픈 것이지, 거짓말을 했기에 기분 나쁘겠는가? 

조선왕조는, 대한제국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을 일본은 식민통치 7~8년만에 해냈다는 저 비아냥 혹은 냉소는 그 직전 대한제국이 무엇을 어찌해야 했는지에 대한 갈파다. 왜 저리 못했는가?

그런 물음에서 망국론에 대한 책임 추궁이 뒤따르며, 왜 망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윤치호 일기는 냉철하게 읽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조선총독이 되어, 때로는 또 윤치호가 되어, 또 때로는 그 반대편에 선 다른 사람이 되어 여러 주체가 용솟음하는 그런 수시적인 주체 바꾸기의 독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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