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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4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1) 불륜 너머 반란을 뽑아낸 점필재 놀랍고 놀랍고 또 슬프고 슬퍼라 / 怛怛復忉忉 임금님 자칫 목숨 잃을 뻔했네 / 大家幾不保 오색 장막 속 현학금 거꾸러지니 / 流蘇帳裏玄鶴倒 어여쁜 왕비 해로하기 어렵구려 / 揚且之晢難偕老 슬프고 놀랍고 슬프고 슬퍼라 / 忉怛忉怛 귀신이 알리지 않았으면 어쩔뻔 / 神物不告知柰何 귀신이 알려져 나라 운수 길어졌네 / 神物告兮基圖大 점필재는 저 사금갑 사건을 소재로 꺼내면서 이리 읊었다. 이 달도가怛忉歌는 주시해야 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주시해야 하는가? 점필재가 사금갑 이야기를 소비하는 맥락이다. 어떤 맥락인가?이 사금갑 이야기는 모두가 궁주宮主(삼국유사) 혹은 왕비(삼국사절요·동국통감)의 불륜에 초점이 갔다. 다시 말해 왕비 혹은 궁주가 불륜을 일삼다 그 현장을 들키는 바람에 그 불.. 2025. 2. 3.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0) 점필재로의 여행 이 사금갑이 왜 그리 사람들 입에 회자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그런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왕비 혹은 궁주의 불륜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걸로 끊임없이 회자하는 인기 비결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그렇다고 환타지성이 특히 뛰어나다 할 수는 없으니, 어찌 보면 조금은 무미건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예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이 이야기가 왜 삼국사기에는 수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말로는 유가적 합리주의에 투철한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진이 이런 이야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이는 이규보가 삼국사기 이전 삼국시대 통사인 이른바 구삼국사를 구해다가 읽고선 동명왕편을 지으면서 그 비스무리한 이야기도 한 적 있으니 전.. 2025. 2. 1.
[국내 박물관 현황과 연혁] 점필재를 앞세운 구미성리학역사관 1. 소개 “일선에는 예로부터 선비가 많아서 영남의 반을 차지한다 하거니와” (一善古多士。號居嶺南半) 이 글은 김종직이 선산부사 재직 시 황린(黃璘)의 영친시권(榮親詩卷)에 남긴 시구의 첫 구절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표현은 그 후, 여러 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에 있다(朝鮮人才半在嶺南 嶺南人才半在一善)’고 하였는데, 그 표현 앞에 ‘세속에서 이르기를(故諺曰)’이라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곧, 이중환의 주관적 견해가 아니라 당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일반화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제 구미성리학역사관이 그 표현이 지닌 가치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길재에서 김종직을 거쳐 김굉필로 이어지는 조선전기 성리학의 도통은 곧 구미 성리학.. 2023. 10. 24.
그대 고을의 사기그릇은 좋아, 아주 좋아 조선의 '도통'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책이 점필재 김종직이 지은 이다. 거기 보면 그 아버지 김숙자가 고령 고을을 다스릴 때의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북방의 호랑이 김종서가 경상도 각 고을을 감찰하러 다니다가 고령에 들렀다. 김숙자가 대접을 하는데, 김종서가 잔칫상보담도 거기 놓인 그릇에 감탄한 나머지 "그대 고을의 사기는 아주 좋구먼, 아주 좋아! [貴縣砂器 甚善甚善]" 근데 김숙자는 눈치가 없었던 건지 알고도 짐짓 그랬던 건지, "하나 드리지요."란 말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점필재는 김종서의 사람됨을 비판하고 아버지의 지조를 높이려는 뜻으로 이를 기록했을텐데, 오늘날은 한국 도자사의 중요한 사료로 주목을 받고 있으니 사료의 쓰임새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담인데, 조선 초 백..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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