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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55

술에서 깨어나니 배 가득 쌓인 눈 한시, 계절의 노래(260) 술에 취해[醉著] [唐] 한악(韓偓) / 김영문 選譯評 일만 리 맑은 강일만 리 하늘 한 마을 뽕나무한 마을 안개 취해 자는 어부 영감부르는 사람 없어 정오 지나 깨어나자배에 가득 눈 쌓였네 萬里淸江萬里天, 一村桑柘一村煙. 漁翁醉著無人喚, 過午醒來雪滿船. 이런 시는 해설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 자체로 더 덧붙일 게 없기 때문이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는 정경을 그대로 느끼면 된다. 그냥 그대로 한 폭의 유토피아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를 읽으며 꼭 의심을 품는다. 만리장성이 일만 리인데 어떻게 마을 앞 강이 일만 리가 될 수 있나? 마을에 다른 나무도 많을 텐데 어떻게 뽕나무만 있나? 어부 영감이 고기도 안 잡고 술에 취해 .. 2019. 1. 30.
주렴 걷자 떠오른 달에 절하는 마음 한시, 계절의 노래(252) 새로 뜬 달에 절하다(拜新月) [唐] 이단(李端) / 김영문 選譯評 주렴 걷자새로 뜬 달 보여 얼른 계단 내려가절 한다 낮은 소리라남은 듣지 못하고 북풍만치마끈 날린다 開簾見新月, 便卽下階拜. 細語人不聞, 北風吹裙帶. 어제는 지구와 달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음력 무술년(戊戌年) 섣달 기망(旣望: 음력 16일)이라 일년 중 가장 큰 달이 떴다. 많은 사람들이 둥근 달을 보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으리라. 이 시가 중국 당나라 때 지어졌으므로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 매우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이단(李端)은 남성이지만 시 속 화자는 그 형상으로 보아 여성인 듯하다. 달을 보고 절을 하며 수줍게 소원을 비는 여성을 시인이 훔쳐보고 쓴 시가 분명하다. 북풍이 불고 있으.. 2019. 1. 24.
눈보라 속 밤을 뚫고 돌아오는 그는? 한시, 계절의 노래(249) 눈을 만나 부용산 주인 댁에 묵다[逢雪宿芙蓉山主人] [唐] 유장경(劉長卿) / 김영문 選譯評 해 저물어 푸른 산아득해지고 날 추우니 휑한 초가가난하구나 삽짝에서 개 짓는 소리들려오나니 눈보라 속 밤에 누가돌아오누나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柴門聞犬吠, 風雪夜歸人.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세계다. 각각의 시어는 모두 그 세계를 빈틈없이 짜맞추며 완전한 구조를 이룬다. 겨우 20자로 이루어진 이 오언절구도 모든 시어가 제자리에서 제각기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며 눈오는 밤 가난한 시골집에 묵어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춥고 외롭고 쓸쓸하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박하지 않은 인정과 또 그런 사람들의 일상에 공감하는 시인의 마음이 시 전체 행간에 은은하게 배어 있다. .. 2019. 1. 21.
가위로 물 오려 만든 눈꽃 한시, 계절의 노래(244) 깜짝 눈[驚雪] [唐] 육창(陸暢) / 김영문 選譯評 이상하게 북풍이세게 부는데 앞마당은 달빛이환히 비친 듯 하늘 신선 어찌 이리솜씨 좋은지 물을 잘라 꽃 만들어펄펄 날리네 怪得北風急, 前庭如月輝, 天人寧許巧, 剪水作花飛. 가위로 물을 오려서 눈꽃을 만든다니...기발하고 아름다운 비유다. 영화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0)이 금방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킴의 손녀는 “눈은 어디서 와요? 할머니!”라고 묻는다. 킴은 자신을 위해 가위손으로 눈을 만들어 날리던 젊은 시절의 연인 에드워드를 회고한다. 에드워드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옛 성에 살다가 킴의 어머니 펙의 인도로 마을로 내려 온다. 늙은 발명가에 의해 인조인간(AI)으로 탄생한 에드워드.. 2019. 1. 17.
촛불 아래서 내뱉는 장탄식 한시, 계절의 노래(229) 밤중에 앉아서(夜坐) [唐]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뜰 앞에 온종일밤 되도록 서 있다가 등불 아래 때때로날 밝도록 앉아 있다 이 마음 말 안 하니어느 누가 알아줄까 또 다시 한 두 번씩장탄식 내뱉는다 庭前盡日立到夜, 燈下有時坐徹明. 此情不語何人會, 時復長吁一兩聲. 유학자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대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이들은 고대로부터 각종 의례(儀禮)를 관장하는 직책을 맡아 이른바 여러 행사 사회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관직 중심주의로 귀착되었고 마침내 자신의 학식과 지혜를 최고통치자에게 제공하는 ‘왕사(王師)’가 되기 위해 일생을 .. 2018. 12. 29.
눈발에 푸른 대나무 옥가지 걸치니 한시, 계절의 노래(222) 눈을 마주하고(對雪) [唐] 고변(高駢) / 김영문 選譯評 육각형 눈꽃 날려 문 안으로 들어올 때 청죽이 옥 가지로 변하는 걸 바라보네 이 순간 기쁜 맘에 높은 누대 올라 보니 인간 세상 온갖 험로 모두 희게 덮여 있네 六出飛花入戶時, 坐看靑竹變瓊枝. 如今好上高樓望, 蓋盡人間惡路岐. 눈이 내리면 대개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눈을 처음 보는 아이들조차 즐거워한다. 왜 즐거워할까? 거의 육십 평생을 살아왔지만 잘 모르겠다. 빙하시대의 어떤 기억이 인류의 유전자 속에 남이 있는 것일까? 비보다 가볍고 포근한 느낌 때문일까? 차별 없이 펼쳐지는 드넓고 흰 천지에서 안온함과 평등함을 감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이유가 작용하는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눈이 내.. 2018.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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