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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58

달거리사건, 발설자는 문희였다 오늘 화랑세기 강연에서도 나는 예의 김유신-김춘추 축국경기와 그에 따른 김유신의 옷찢어발리기와 이후 전개된 야합 행각을 이야기했다. 보희는 월경 중이었으므로 김춘추와 맺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행운은 그 동생 문희한테 돌아갔다. 강연에서 이야기했다. 이 얘기가 어떻게 전해졌겠는가? 난 이들 네 사람 중 한 명의 발설자가 있다고 했다. 이들 중에 까발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 이야기는 결코 후세에 전해질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화랑세기를 꺼내들었다. 발설자는 누구냐? 문희였다. 화랑세기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 출처가 《문명황후사기文明皇后私記》라 했다. 문명이 누구인가? 바로 문희다. 사기私記가 무엇인가? 사사로운 기록이란 뜻이다. 국가의 공식 편찬물인 史記에 대응하는 말이다. 그러니 문명황후사기는 .. 2021. 1. 12.
용수龍壽-용춘龍春이 다른 사람인 빼도박도 못할 근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즉위년 조에 김춘추 계보를 기술하면서 그의 아버지를 일러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伊飡 용춘龍春[혹은 용수龍樹라고도 한다.]"이라 했다. 용수는 누구이며 용춘은 또 누구인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삼국사기는 김춘추의 아버지를 “용춘[혹은 용수라고도 한다.](龍春[一云龍樹])”이라 했을까? 용수와 용춘은 같은 인물일까? 아니면 다른 인물일까? 같은 인물이라면 표기법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이 구절은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을 판별할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가? 있다. 화랑세기인가? 아니다. 위 태종무열왕본기에 앞선 같은 신라본기에 용수와 용춘이 각기 다른 데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먼저 진평왕본기 44년(622)조를 보면 이해 2.. 2020. 12. 19.
13세에 즉위해 18살에 친정한 진평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은 재위 기간이 물경 53년(579∼632)에 달하니, 60년을 재위한 시조 혁거세에 이어 신라왕으로서는 두 번째로 긴 기간 왕위에 있었다. 그의 재위 마지막 해가 그가 죽은 해지만,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사서에서는 누락되었다. 다만 그가 어린나이에 즉위했을 것이라는 근거는 우선 재위기간이 지나치게 긴 데다가, 그의 계보를 검토할 때도 그러하다. 삼국사기 그의 본기에는 그에 대한 정보를 약술하기를 “이름은 백정白淨이며, 진흥왕眞興王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라고 했다. 나아가 체구가 거대한 듯 “임금은 태어날 때부터 생김새가 기이하고 체구가 장대하였으며, 뜻이.. 2020. 12. 13.
오직 박창화朴昌和만 주목한 치술鵄述 이것도 하도 여러번 얘기해서 지겨울 수 있지만, 또 얘기하련다. 《삼국유사》 왕력편 신라 제18대 실성마립간實聖麻立干 조에는 "(실성)왕은 즉 치술鵄述의 아버지다[王卽鵄述之父]"라는 구절이 있다. 도대체 이 구절이 왜 나왔는지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치술은 아버지가 실성왕이다?" So what? 느닷없는 구절이기에 이를 설명할 도리가 어디에도 없었다. 첫째, 치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둘째, 치술 아버지가 실성왕인 게 어쩌라고? 한데 박창화가 필사했다는 《화랑세기》에는 이와 관련한 명확한 언급이 보인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치술은 실성왕 딸로서 남편이 바로 제상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박제상,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이라고 기록된 바로 그 제상이었다. 이런 《화.. 2020. 10. 27.
신라 왕비를 배출한 대원신통, 뿌리는 倭 왕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중고기 신라왕실에서 왕비를 배출하는 양대 모계 혈통으로 1. 진골정통眞骨正統 2. 대원신통大元神統 두 가지가 있거니와, 진골정통은 그 뿌리가 지금의 경북 의성에 뿌리를 박은 조문국(혹은 소문국)이다. 그 왕실이 신라에 통합됨으로써, 그 왕녀가 배출하는 딸과 그 후손들이 왕비에 충당되곤 했다. 이 진골정통에 대비되어 눌지왕 무렵 이후에 또 다른 모계 혈통이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니 그것이 곧 大元神統이다. 이 대원신통은 현존 《화랑세기》에서는 그 뿌리가 보미寶美라는 여성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뿐, 그 보미는 혈통이 어찌되는지 확실치 않다. 원본에는 있었지만, 그것을 담았을 부분은 불행하게도 탈락하고 없다. 그렇다면 보미는 누구인가? 그 어미는 왜 왕실 왕녀다. 그렇다면 보미가 신라와.. 2020. 10. 27.
[역사학자로서의 남당 박창화] 《중앙사단》 논문의 경우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를 내가 도서출판 김영사를 통해 공간하기는 2002년 5월이다. 직후 절친한 형 박환무가 연락이 왔다. 일본 근대 천황제를 주된 연구분야로 삼는 서강대 사학과 출신으로, 일본 유학파다. 그의 이야기인즉, 박창화가 논문을 공간한 것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진즉에 박창화를 역사학자로 보았으니,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그는 그 시대 전형의 역사학자였다. 나아가 《화랑세기》가 공개되면서 알려진 그의 유작들에는 분명히 강역과 관련된 논문도 있었고, 더불어 무엇보다 《요사遼史》지리지를 필사하기도 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에서 그가 학술지에 공간한 논문까지 있다니, 역사학도로서의 박창화는 이제 기정사실화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었다. 박환무에 의하면, 초기 .. 202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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