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07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 그의 난초를 보면서 예전에 몇 번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이란 분을 언급한 적이 있다. '소연'이란 그의 또 다른 호를 밝히기도 하고 그 부친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1861-1934)과의 관계를 찾기도 해서 나하고는 퍽 인연이 있는 화가인데, 우연히 그가 1918년 친 난초 반절지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언제 그렸는지가 명기된 경우는 아주 드문데, 정작 작품을 보니 이름만 가린다면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의 솜씨가 아닌가 할 만하다. 아니, 화제 글씨는 소호의 전형적인 하소기何紹基(1799-1873)체 행서고 난은 소호 초기 스타일, 더 정확히는 석파 이하응(1820-1898)의 리드미컬한 춘란이다. 일부러 모사를 했나 싶을 정도로 방불하지만, 자기 스타일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뿌리가 드.. 2024. 6. 22. 이규보는 1168년생? 1169년생? 우리 친구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은 보통 1168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가 태어난 해인 무자년戊子年을 단순 환산한 결과이다. 실제 그는 1168년 1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살던 시대는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을 썼다는 게 문제다. 음력과 지금 우리가 쓰는 태음태양력은 대략 1달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이규보의 생년월일을 지금의 달력으로 환산하면 1169년 1월 어간 생이 된다. 그럼 백운거사를 1168년생이라고 해야 하나 1169년생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가 한 살 줄어 이른바 빠른 년생이 되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비슷한 문제는 생각보다 많으며, 생각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조선 후기의 방향을 틀어버린 대사건 '병자호란'도 1636년이라고 발생 연대를 외우곤 하지만, 실제로는 병자년.. 2024. 6. 3. 글씨로 만난 천하의 친일파 김대우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니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한다(一、我等ハ皇國臣民ナリ忠誠以テ君國ニ報ゼン。)." 그 유명한 1조다. 1937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1874-1955)가 이른바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조선인들로 하여금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하게 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만들게 한 맹세문이다. 그런데 이 를 만든 건 일본인이 아니었다. 당시 학무국 촉탁으로 있던 이각종(1888-1968?)이 초를 잡고, 사회교육과장 김대우(1900-1976)가 수정 완성한 뒤 총독에게 보고하고 배포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김대우'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대략 감이 잡힐 것이다. 과연 그는 일제 말 출세에 출세를 거듭해 전북도지사, 경북도지사까지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되기까지 한다.. 2024. 5. 23. 갈락티코가 명품을 보장하진 않아 구룡산인 김용진(1878-1968), 정재 최우석(1899-1965), 묵로 이용우(1902-1952), 청전 이상범(1897-1972), 심향 박승무(1893-1980), 심산 노수현(1899-1978), 수운 김용수(1901-1934), 무호 이한복(1897-1944), 정재 오일영(1890-1960)... 이름만 들어도 아찔한 근대의 대화가들이 어느 날 한자리에 모였다. 집주인 다산 박영철(1879-1939)이 펼쳐놓은 고급 비단 위에 그들은 저마다 하나씩 돌을 앉히고 꽃을 틔웠다. 그리 작지 않은 화면이 꽉 들어차는 건 순식간이었다. 거기 집주인이 마지막으로 낙관을 꾹 찍었다. 박영철이 일본 사업가에게 선물하고 근 90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이 그림-10인 합작도?-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다.. 2024. 5. 19. 素荃 vs 素筌, 서예가 손재형 호 근대의 이름난 서예가 손재형(1902-1981)은 호가 소전素荃이다. 그런데 그의 호를 소전素筌으로 아는 분이 의외로 많다. 알기만 하면 다행인데, 그걸 그대로 이야기하신다. 작품을 보여드리고 그렇지 않다고 얘기를 해도 믿지를 않으신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소전의 이충무공시(1954)) 2024. 5. 15. 호랑이를 만나면 담배를 태워야 때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병인년(1866), 조정은 천주교 신자를 뿌리뽑으려 혈안이 되어있었다. 조선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 주교와 신부 12명 중 9명이 이때 붙잡혀 순교하였다. 요행히 살아남은 셋 중 한 사람,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는 조선인 천주교도 두 사람과 함께 상하이로 가고자 했다. 밀항선을 타려 오만 고생을 다한 그가 도중에 겪었던 일이라고 한다. ——ㅡㅡ 저희가 길을 절반쯤 걸어서 어느 산꼭대기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고 흙과 조약돌이 굴러 내렸습니다. 그러자 강씨는 "길 윗편 왼쪽에 호랑이가 있습니다. 무서울 것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겠습니다."했습니다. 안드레아는 "호랑이가 담뱃불을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피우겠습니다."하기에 저희는 모두 조용히 담배를 피웠습니다.. 2024. 5. 9.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8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