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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기자의 범금팔조와 한 고조의 약법삼장이 매우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약법삼장은 과연 이것이 존재했겠는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이미 거대 제국으로 커져버린 한 제국이
살인자, 상해자, 도둑 셋만 처벌한다는 간단한 법만으로 다스려졌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였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전국시대 이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갈수록 빡세지는 세상에서
도피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반영된 이야기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주나라를 피해 망명한 기자가 단 여덟 개 법조항만으로 조선을 다스렸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 전국시대 이래 중원이 그 만큼 법가적 통치국가화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갈수록 빡빡해지는 당시의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황해 바다 건너 저편에 신선의 이야기가 꾸며지고
느슨하면서도 도리에 따라 다스려지는 이상향이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아래 글은 도화원기와 삼국지 동이전의 진한전 이야기가
또 매우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적어 둔 것이라,
한번 읽어봐 주시기를 바란다.
결국 전국시대 이래 동쪽으로 피해온 사람들은 전역을 피해 도래한 사람들 외에도
빡빡한 법가적 질서에 지친 대륙의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기자의 팔조법금과 진한의 이주민 이야기는 이러한 이상향의 관념을 어느정도는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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