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사서집주에서 주희가 적어 놓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16세기이지 싶다.
사서집주가 워낙 유명하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를 우습게 보는 경우도 있던데
사실 성리대전이니 하는 성리서를 본다고 해서
사서집주의 수준을 많이 뛰어 넘는 것이 아니다.
조선성리학 16세기의 발전은
성리대전과 각종 성리서를 수입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서집주에 대한 오랜 침잠의 결과로 그 내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 데서 온다.
사서집주의 성리철학 주가 이해하기 상당히 난해해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주자어류니 성리대전이니 하는 것을 보는 것이지
사서집주의 주자 주 자체가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사서집주의 주자 주를 다 이해하면
다른 성리철학 관련 서적은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사서집주 주자 주는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쉽게 이해하기 매우 어렵고, 사서의 주자주는 완성된 철학체계로 주석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16세기 조선 성리학자의 성리철학 논변을 보면
여말선초의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사서집주의 주자주를 철학적으로 완전히 이해했을 것 같지 않다.
대개 16세기 기라성 같이 일어난 우리 주자학자들의 당시 논란을 보면,
북송대 정호 정이, 그리고 주자가 제자들과 주고 받던 다양한 논점의 철학적 논의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조선땅에서 반복했는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조선의 성리학 수준이 북송-남송대 수준에 방불해졌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보다 앞선 여말선초는?
필자는 이 시기 우리 성리학자들은
아는 것보다는 훨씬 행동이 앞서간 상태였다고 본다.
자본론 딱 한 번 읽고 볼셰비키 혁명을 한 형국이랄까.
공산당으로 비교하자면 일단 혁명부터 해 놓고 공산주의 이론서를 읽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혁명부터 하고 차르까지 다 처형해 놓고 볼셰비키 국가를 수립한 후
그때부터 막스 레닌을 공부하기 시작해서 2백년 후쯤 비로소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된 것.
그것이 조선성리학과 조선왕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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