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조개장식 말갖춤새, 오키나와 인근 조개류 껍질 확인 (남경문 기자, 뉴스1, 2017.08.16)
전제하지만, 이런 반론 혹은 이의 제기에 내가 그 뚜렷한 반론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얘기는 나는 누차 환기 차원에서 지적했거니와 새삼 다시 정리한다.
위 첨부 파일 기사를 보면, 김해 대성동 고분군 출토 소위 조개류가 오키나와 근해 산이라고 한다.
오키나와 인근 해역산이라는 이런 조개류가 신라 무덤에서도 나오고, 기타 가야 지역 고분에서도 나온 것으로 안다.
한데 이를 오키나와산이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누가 그런 이야기를 발설하기 시작했으며, 그 검증은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가?
저런 조개 껍데기가 한반도 삼국시대 고분, 특히나 신라나 가야문화권에서 나오기만 하면, 오키나와 산이라는 믿음이 단 한번의 의문, 혹은 이의 제기도 없이 통용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를 이모가이 신화라 부른다.
한국고대사에는 작금 두 가지 신화라 부를 만한 외래문화 수용 논리가 있다.
첫째, 낙랑 신화이니, 기원전후기 무슨 외래 계통 문물만 나왔다 하면 낙랑 영향 운운한 것을 말함이니, 이것이 얼마나 웃긴지는 추후 다른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둘째가 바로 남방에 대한 열망이거니와, 오키나와 이모가이 신화는 이에서 발단을 마련한다.
전자가 대륙 지향이라면 후자는 남방 혹은 해양 지향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는가? 말할 것도 없이 일본 학계다.
일본학계가 이런 주장을 하고, 그것을 국내 학계가 단 한 번도 의문에 대한 재검토 없이 받아들이는 형국이니, 이는 특히 일본 열도에서 유학한 국내 역사고고학도들이 수입통로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과연 오키나와산인가?
이것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첫째, 저런 조개가 한반도 근해에서는 오직 오키나와 열도 근처 해역에서만 서식한다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오키나와 그 해역과 비슷한 위도를 따라 저런 조개류는 내가 알기로 중국 강남 혹은 그 이남 앞바다, 혹은 대만 열도 인근에도 서식한다.
한데 왜 꼭 오키나와리요?
둘째, 그것이 마구류를 비롯한 각종 장식품으로 쓰는 전통이 일본 열도에서 비롯하는가?
이런 전통이 내가 알기로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는 확실히 있고, 그 이전에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한데 조개류를 마구류 장식으로 이용하는 전통은 과연 일본 열도만인가 하는 의문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풀 것인가?
이 두 번째 전제 역시 그것으로 사실 단계에 가까운 확정이 되지 않는 한, 저 오키나와 신화는 성립이 난망하다.
조개류 마구류 장식 전통은 내가 알기로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이후라고 안다.
현재까지 고고학 발굴조사로 그렇다.
특히 신라 가야시대에 이런 전통이 등장했다가 일시 유행하고 그 뒤에는 좀처럼 그 흔적을 찾기 힘든 것으로 안다.
의심해야 한다.
저들 조개가 과연 오키나와산만이어야 하는지부터 다시금 우리가 재검토해야 한다.
일본 학자가 그리 주장했다 해서 그 주장을 묵수할 수는 없다.
우리도 수산학 관련 전문가들 불러서 과연 저 주장이 맞는지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언제까지 오키나와 신화에 포박된 일본 학자들 불러서 똑같은 결론을 내야 한다는 말인가?
똥개 눈에는 똥밖에 안보이는 법이다.
이런 재검증을 통해서도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면, 나 역시 군말없이 따를 자세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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