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
미암 유희준 글 모음집인 미암집 제1권 시(詩) 칠언율시(七言律詩)에는 '소 전염병을 탄식하며〔牛瘴嘆〕'라는 제하 시가 있으니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엔 역병으로 죽음을 탄식했는데 / 去年曾歎疫虔劉
올핸 양기 성해 괴이타 무슨 연유인가 / 今又愆陽怪㡳由
누런 송아지 집집마다 네발 뒤집히고 / 黃犢家家顚四足
백성들은 날마다 두눈에서 눈물 흐르네 / 蒼生日日泫雙眸
곤궁한 백성아 밭 거칠까 두려워 마라 / 窮民休怕田爲穢
현명한 수령이 응당 칼을 소로 바꾸리니 / 賢守應敎劍化牛
연일 내리는 눈발 더더욱 기쁜 까닭은 / 更喜飛霙連日降
풍토병 거둬주고 맑은 바람 펼쳐서라네 / 爲收瘴氣布淸飀
나는 이것이 구제역인지는 모른다. 다만 증상으로 보아 구제역 일종임은 분명하다고 본다. 전통시대에도 소 전염병을 전하는 기록이 더러 보인다. 요새 발생하는 구제역을 외래계라고 설명하곤 하는데 저런 기록을 많이 본 나는 그런 구제역 일부가 외래종일 수 있지만, 한반도에는 없었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구제역 방역
시에서 말하는 지난해 역병은 아마도 사람과 관련한 전염병 아닌가 한다. 미암이 말한 이 사건은 정확한 연대를 찾으려면, 실록을 뒤져야 할 것이다. 이에 '우역(牛疫)'이라는 말로 실록을 검색해 보니, 유희춘이 말하는 저 사건을 흡사 떠올리게 하는 일이 명종실록 22권, 명종 12년(1557) 3월 25일 무인일(戊寅日) 일곱 번째 다음 기사가 있으니,
함경도 경흥(慶興)·경원(慶源)·온성(穩城)·종성(鍾城)에 우역(牛疫)이 맹렬히 번져 (소가) 수개월 사이에 많이 폐사(斃死)했다.(咸鏡道 慶興、慶源、穩城、鍾城, 牛疫熾發, 數月之間, 多斃死。)
미암이 읊은 일은 틀림없이 이 사건을 말할 것이다. 미암의 행적을 보면, 1547년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돼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고향에 가깝다 해서 이내 함경도 종성 땅으로 이배(移配)되었으니, 그곳에서 물경 19년을 보내고는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비로소 사면되어 중앙 정계로 복귀했다.
마침 실록에서는 그의 유배지인 종성에 소 전염병이 유행했다 하거니와, 저 시는 명종 12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나는 저 시에서 전염병이 사람과 소에 거의 동시다발로 발생했음을 추정했으니, 이를 증명하는 이 무렵 사건이 실록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중종실록 97권, 중종 37년(1542) 2월 19일 경오일 세 번째 기사가 그것이니,
함경도(咸鏡道) 회령부(會寧府)에 여역(癘疫)이 퍼져 죽은 남녀 노소가 2백여 명이고, 덕원(德源)·함흥(咸興)·홍원(洪源) 등의 고을에는 우역(牛疫)이 크게 번져 소가 매우 많이 죽었다.(咸鏡道 會寧府, 癘疫熾發, 男女老少物故者, 二百餘人。 德源、咸興、洪原等官, 牛疫大發, 死亡甚多。)
라고 했으니, 사람 전염병과 소 전염병이 왜 동시에 움직이는지는 이 분야 전문가들이 해명할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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