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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저 밑바닥에서 언제나 끓어오르는 그 무엇

by taeshik.kim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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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겨야 그에 어울린다 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와는 외모 기타등등 한참이나 거리가 먼 내가 영문학 언저리를 잠시 머뭇한 적이 있었으니, 그러한 한때는 영문학이란 데를 투신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기자질로 낙착했다.

그런 시절, 그러니깐 내가 영문학이라는 걸 해 봤으면 좋겠다는 좋겠다는 꿈이 어느 정도는 있던 있던 시절. 그런 나에게 정작으로 요긴한 것이 영국과 미국, 나아가 아일랜드 역사였다. 

하지만 영어영문학과 교과과정에는 이와 관련한 그 어떤 강좌도 개설되지 않았다. 




옆집 사학과를 보니 서양사가 있었던 모양이나, 내가 원하는 강좌는 찾기가 힘들었고 그나마 다른 학과에 대한 배타의 분위기가 팽배한 때라, 3학년때인가는 하현강 선생이 개설한 한국사 원전 강독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다른 과는 한문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나만큼 한문하는 놈이 어딨다고 나를 퇴짜 놓는단 말인가?

당시를 보면 영국사 개설서로 세 종 정도가 시중에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모두가 번역서였다. 두 종은 문고본이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유명 문필가인 앙드레 모리악인가 하는 사람의 신국판 번역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시에 영어 원전으로 이 분야 공부를 더욱 확대하고픈 실정은 아니었으니, 가장 큰 문제는 그 중간에 군 복무 문제가 대두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이야기한 86~87년 소값 파동 된서리에 나는 군대를 갈 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결심하고, 그 통로로 카투사를 택하고 그 시험에 합격하면서 징집 통지서를 받고는 만사가 밥맛이 없었다.

그러다가 27개월 채우고 복학한 다음에는 시대도 변하여 최루탄 난무하던 캠퍼스는 이상하게 돌변하여, 어찌어찌하여 결국은 기자로 낙착하게 되었다. 

요즘 와서 보니, 그 옛날 내가 필요한 분야에서도 책자만 해도 그때와는 견줄 바 없이 풍부해졌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그러고 보니 그 옛날에 견주어 주변 여건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이런 혜택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이 20, 30년 후에 보면 지금의 나와 똑같은 소릴 할 것이라는 거 너무 잘 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다만 나는 그만큼 목이 마르지 않았기에 우물 파는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다.

복학 이후에도 그 꿈이 눈에 띄게 사그라 들었다 하긴 힘들지만 달라진 한 가지가 있었으니 진짜로 내가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펼쳐졌다는 점이다. 내가 벌지 않으면 내가 굶어죽는 시대였다.

그리하여 그 복학 삼학년은 막연히 공부란 걸 하고 싶다는 꿈을 완전히 접고는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 삶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책 살 돈조차 변변찮았고, 기타 여러 여건도 녹록치 않은 저 시절을 문득문득 떠올리다 보면, 가끔은 저 밑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르기도 하는데 이걸 한恨 혹은 회한이라 할까 응어리라 할까 모르겠다.

그 시절 장발을 기억하며 빙그레 웃기만 하고 너털웃음으로 털어버릴 날이 과연 올까?


***

2014년 7월 16일 일기를 약간 고친다.

지금은 답한다.

Never 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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