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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기 쓴 것 같지만,
찐밥의 시대에 조, 기장, 수수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곡물의 낱알 크기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https://blog.kakaocdn.net/dn/q4Ypp/btsEFgQ3xBt/smWn66VIfksYbkeuEsme7k/img.jpg)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밥을 쪄서도 충분히 익는다.
오히려 지금 방식으로 끓여서 밥을 짓게 되면 너무 익을 수도 있다.
조나 수수를 밥에 섞어 지을 때 거의 문드러진 모양으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찐밥이라는 것은 조, 기장, 수수를 위해 특화한 방식의 밥짓기라는 말이다.
필자는 이 찐밥 짓기가 잡곡문명권에서 완성되어 한반도 남부에서도 쌀밥도 이를 이용하여
밥을 짓기 시작했으리라 보는데,
아마 쌀을 쪄서 밥을 짓던 시기에는 별로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 쌀밥문명권에서 잡곡문명권을 이탈하여
진정한 쌀밥맛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필자가 보기엔 전술한 대로 무쇠솥이 나오면서부터다.
밥을 찐 시루가 나온다?
일차적을 그 시루는 잡곡밥을 위해 발명되었고 쓰이다가
한반도 남부에서는 쌀밥까지 짓기 시작했으리라 본다.
시루는,
잡곡밥을 위해 나온 것이다.
![](https://blog.kakaocdn.net/dn/qvD5Q/btsEFjUpTBH/i5NkyYj2lZBYeaKooKIUs1/im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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