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의대, 의과학 자연과학자로 입신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쪽 전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고
나이 60 이후 인문학을 파고 든다고 여러 번 선언했지만
아무래도 곁다리 공부라 한계는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무리해서 이쪽 연구로 넘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애초에 의과학은 60 이후 사실상 연구가 종지부를 찍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분야는 실험실 작업을 바탕으로 하는지라
실험실을 정년 이후 유지하기가 힘든 탓에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65세를 넘기기 힘든다.
최근에는 이것도 몇 년 더 연장한다는 사람들도 보는데
필자가 보기엔 별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이 분야는 연구 발전 흐름이 매우 빨라서
젊은이가 아니면 따라가기 힘든다.
실험실 작업이란 것도 젊은 연구자들의 놀이터이지
나이 60이 넘어서면 실험실 작업은 영감님들 몫은 아니다.
대개 이 분야는 인문학보다 학자로서 입신은 빠르지만 은퇴도 빨라
자연과학 모든 분야가 다 이렇다.
필자의 분야를 보면 의학에서 일어나 인문학을 섭렵한 선학이 몇 분 계신데
의학사에 매진한 분으로는 한국의 김두종, 일본의 미키 사카에 양 선생이 있다.
이 양반들은 두 분 모두 임상의로 입신하였다가 의학사에 투신 한 분들로
연구 호흡이 매우 길어 최종 업적은 70대를 넘어서야 나왔고
마지막 연구는 80에 마무리 되었다.
이 두 분이 남긴 업적이 사실상 한국 의학사의 기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도 극히 우수하다 할 수 있다.
이 두 양반 연구가 이렇게 길어진 이유를 필자 나름의 생각으로 써 보면 이렇다.
1. 두 분 모두 장수했다.
2. 실험실과 무관한 연구를 했다.
이 두 가지다.
물론 모든 인문학자가 모두 이렇게 연구 수명이 긴 것은 아닌데,
비슷한 부류의 서양학자라 할 재래드 다이아몬드도 거의 비슷한 길을 걸어간 것을 보면
전환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자연과학자에게는 통섭적 학문으로의 변화가
학자로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문학자라는 게 내가 선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 역시 장기간 준비해야 하고
아무리 자연과학자에서 입신한 통섭적 인문학을 지향한다고 해도 준비가 없을 수는 없겠다.
이 준비를 실험실을 이끄는 동안에 틈틈이 해내야 60이후 비로소 이것이 가능해 진다는 점에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긴 호흡의 연구를 이어 가려면 인생전반을 통철하는 연구주제가 필요한데
이 단계에 도달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또한 말이 그렇지 어떻게 팔순, 구순까지 의미있는 업적을 내겠는가.
남들이 손가락질 하기 전에 알아서 그만 마무리 짓는 지혜도 노년의 연구에는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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