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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12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을 구리 한반도에는 구리가 넉넉하지 않았을 만큼, 고물 청동은 녹여 다른 기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썼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구리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하겠다. 청동기시대에는 위세품으로 동검이나 거울의 모습으로 이용되었겠지만, 불교의 시대가 열리자 이전의 위세품들은 고물로 취급되어 절의 불상이나 동종, 기물들로 모습을 바꾸었을 것이다. 조선시대가 되어 억불이 되자 이번에는 절의 기물들이 줄줄이 녹여져 놋그릇이 되거나, 화폐경제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상평통보로 모습을 바꾸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통용한 상평통보에는 청동기시대에 동검이나 거울이었던 것이 불상이 되었다가 마침내 사람들이 쓰는 돈으로 모습을 바꾼 것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단.. 2023. 4. 17.
세형동검이 수 백개는 녹아 들어갔을 성덕대왕신종 우리나라는 알다시피 구리가 잘 안 난다. 청동기시대 위세품으로 동검과 함께 석검이 많이 쓰인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뭔가 폼잡을 게 필요한데 구리가 워낙 안 나다 보니 석검으로 만들어 차고 칼자루만 세형동검처럼 위장하지 않았을까. 지난 주말에 학회를 참석하고 시간이 남아 경주박물관을 들렸다. 성덕대왕신종이 보였다. 그 규모에 새삼 놀라면서도 도대체 저 구리가 어디서 났을까 궁금해졌다. 아마 구리를 사오기도 했겠지만, 전해 오는 고물 청동기물도 많이 저 종 안에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에밀레 종 전설처럼 스님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았을때 아마 돈을 내놓고 전답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청동기물을 내 놓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성덕대왕 신종에는 그때까지도 전해오던 세형동검 수 백.. 2023. 4. 13.
훔친 불상, 종놈은 부처님 녹여 기물을 만들고 주인은 눈감아 주는 대가로 귀중품 복장을 받다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 10월 18일 丙辰 3번째기사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종[奴]이 도적질한 물품을 받은 검교 전서 이천룡을 과죄하다 형조刑曹에서 검교전서檢校典書 이천룡李天龍의 죄를 청하였다. "천룡天龍의 종[奴]이 동불銅佛을 도둑질하여 기명器皿을 만들었는데, 천룡이 이를 알고도 부처 배속에 들어있는 채단綵段과 진주眞珠를 받았으니, 청컨대, 율律에 의하여 과단科斷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4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刑曹請檢校典書李天龍罪: "天龍家奴盜銅佛鑄器皿, 天龍知之, 受其腹藏綵段眞珠, 請依律科斷。" 從之。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4면 【분류】 사.. 2023. 4. 2.
불상佛像의 정치학, 눈치만 보는 조선 국왕 문종과 그를 겁박하는 신하들 문종실록 2년 임신(1452) 3월 13일(병오) 기사다. 처음에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가 사사로이 불상佛像을 제조하니, 사헌부司憲府에서 이를 듣고 이졸吏卒을 내어 수색해 잡아서 일의 상황을 조사해 알아서 죄주기를 청하니, 임금은 남휘가 부마駙馬라 하여 그 죄를 특별히 용서하게 하고는, 이내 승정원承政院에 명하기를, “의산위 남휘가 제조한 불상을 사헌부에서 그 도금塗金한 것을 깎아 없애기를 청하는데, 다 이루어진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만약 이미 이루어졌다면 부수어 버릴 수는 없으니, 진관사津寬寺와 장의사藏義寺 등의 절에 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도승지都承旨 강맹경姜孟卿이 아뢰기를, “사사로이 불상을 제조한 것은 율律에 중죄重罪로 되어 있으니, 만약 버려두고 캐묻지 않는다면 오히려 될 수 있지마는,.. 2023. 3. 29.
구리, 제련도 하지 못하고 채굴도 못한 조선왕조 서영보徐榮輔,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篇4 금·은·동·연金銀銅鉛 중 구리[銅]에 대한 기술 전문이다. 동銅 우리 나라에서 또한 동이 산출되나 제련하는 방법을 몰라서 공사公私 수용需用에 순전히[全] 왜동倭銅을 사용하였다. 영종 신유년에 비로소 수안遂安·영월寧越의 동을 채취하고, 그 뒤에 또 보은報恩·안변安邊의 동을 채취하였으나, 제련한 것이 마침내 왜동만 못하여 쓰이지 못하였다. 정종 을사년에 호조에서 주전鑄錢할 때에 안변의 영풍동永豊銅을 섞어 써서 이 뒤부터는 주전하는 데에 잇달아 사용되었다. [주-D001] 순전히[全] : ‘순전히[全]’가 어느 본에는 ‘專’으로 되어 있음. [주-D002] 수안(遂安) : ‘수안(遂安)’이 어느 본에는 ‘水原’으로 되어 있음. ⓒ 한국고전번역원 | 고려대학교 민.. 2023. 1. 1.
진안에서 찾은 구리 제련 시설 진안군 '제동유적' 4차 발굴조사 완료…"사적 지정 추진 검토" 정경재 / 2021-07-12 13:57:30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57259449371 진안군 ′제동유적′ 4차 발굴조사 완료…"사적 지정 추진 검토" (진안=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전북도와 진안군은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와 함께 제동유적(製銅遺蹟) 4차 발굴조사를 마쳤다고 12일 밝혔다.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있는 제동유적은 신증동국 k-odyssey.com 이 보도 토대가 된 진안군 오늘자 보도자료는 아래와 같다.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제동유적 4차 발굴조사 제동로 및 대규모 폐기장 추가 조사완료 = 동 생산체계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자료 추가 확보 = = 국내 최초.. 202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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