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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1) 형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동생

by taeshik.kim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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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아니었더래면, 형만 없었더래면,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자신은 이런 식으로 통탄했을지 모르나, 그 잘난 형을 빌어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푸념 아니겠는가?

그래도 그 잘난 형이 아니었더래면, 삼국사기 열전 첫머리는 내가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열권에 지나지 않는 그 전체 열전 중 첫 세 권을 몽땅 형이 가져갔으니, 아무리 김부식이라도 그렇지 이런 파격은 너무하지 않겠는가?   

그 잘난 형 때문에 어쩌면 가장 심하게 저평가되었을지도 모르는 김흠순金欽純.


근대화가 채용신이 그린 김유신이라고. 물론 상상의 소산이다.



삼국사기 권 제42 열전 제3 김유신(下)에는 고구려 정벌군을 일으킨 문무왕이 그 진용을 짜면서 총사령관에 김유신을 앉히고, 그를 보좌하는 부사령관 양날개로는 김흠순과 김인문을 포진케 했지만, 풍질로 주저앉은 유신은 후방에 남아 수도경비 비상사령관인 감국監國을 맡게 하고는 김흠순과 김인문을 불러 단단히 당부한다. 이날 김유신은 와병 중이라, 입궐하지 못했다. 

이날 대화록 일부가 저 열전에 남았으니, 

“공들 세 신하는 나라의 보배이니, 만약 한꺼번에 적의 땅으로 갔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 돌아오지 못한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그러하니 유신을 이곳에 남겨 나라를 지키게 하면 은연중 나라의 장성長城과 같아 아무 근심이 없으리라.”

이에서 문무왕은 자리에 없는 김유신을 필두로 본인 친동생 김인문과 작은 외숙부 흠순을 일러 “公等三臣, 國之寳也”라 했으니, 허심하게 넘긴 이 대목이 화랑세기 19세 흠순공 전에서는 

“公은 누차 큰 전투를 치렀지만 패한 적이 없었고 사졸 아끼기를 자기 아이와 같이 했다. 조정에서는 이런 공을 삼보三寶 중의 한 명으로 삼았다.”

고 했다. 이에서 보이는 삼보라는 말은 저 삼국사기 열전과 같이 읽을 적에 그것이 바로 김유신 김인문 김흠순 셋을 말함을 안다. 

그렇다면 김흠순한테 김유신은 어떤 존재인가? 

사기 열전 앞에 인용한 대목 바로 뒤에는 다음 이야기를 채록한다.  

흠순은 유신의 동생이고 인문은 유신의 조카이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섬기면서 감히 거스르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그들이〕 유신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저희가 능력이 없지만 지금 대왕을 모시고 앞날을 알 수 없는 곳에 나아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유신이〕 답하여 말하였다.

“무릇 장수된 사람은, 나라의 방패와 성(城)이 되고 군주의 손톱과 어금니가 되어, 전쟁터[矢石之間]에서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므로, 반드시 위로는 하늘의 도리를 알고, 아래로는 땅의 이치를 알며, 가운데에서는 인심을 얻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성공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충성과 믿음이 있어 나라가 유지되고, 백제는 오만 때문에 나라가 망하였고, 고구려는 교만으로 인해 나라가 위태로운 것이다. 이제 만약 우리가 바르게 하면서 저들이 잘못하고 있는 틈을 노려 공격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큰 나라의 훌륭한 천자의 위엄도 함께하니 어찌 안되겠는가! 가서 부지런히 노력하여 잘못됨이 없도록 하면 곧 일이 성사될 것이다.” 

두 사람이 절하며 말하기를, “말씀을 받들어 감히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는 사안이 워낙 중대한지라, 문무왕이 평양으로 친정을 감행한다. 왕이 장기간, 그것도 이웃 나라 정벌을 위해 온나라 군사를 징발해 수도를 비운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는 누구나 다 알았다.

그 텅빈 수도방비, 나아가 수도만이 아니라 외국으로 출정한 국군통수권자를 대신해 나라를 대신 통수해야 하는 자리를 맡게 된 김유신이 출정에 앞서 집을 찾아온 두 사람을 불러 하는 말이 저렇다. 

열전은 “欽純庾信之弟, 仁問庾信之外甥, 故尊事之, 不敢抗”라 했지만, 이런 친인척 관계가 복종을 자동으로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형제지간 숙질지간 쌈박질은 처첩대전보다 더 악랄할 때도 많음을 우리는 무수한 역사에서 보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드물지 아니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시할 것은 동생이다. 저런 잘난 형을 둔 동생은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 남았을까? 

유의할 점은 흠순이 형한테 저리 고분고분해진 것은 한창 늙고나서이며, 젊은 시절에는 반항기, 특히 형을 이기고자 하는 경쟁심이 엄청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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