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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6) 블루칩을 투자하는 수망택주水望宅主

by taeshik.kim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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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廉長은 같은 가야 혈통이기는 하지만 금관가야 계통인 김유신-김흠순 형제와는 달리 지금의 경북 고령에 기반을 둔 대가야 계통이다. 그럼에도 묘하게도 가야라는 동질 의식을 공유했으니, 이 점이 실로 묘하다. 

김유신만 해도 훗날 일통삼한을 달성한 뒤에는 대가야 혈통인 문노文弩를 추앙해 그의 화상을 포석사에 모시기도 했으니, 군사 분야에서 혁혁한 전과를 냈다는 그것 말고도 짙은 가야 동질 혈통 의식이 작동했다. 

염장은 595년생인 김유신보다 아홉살이나 많은 586년생이라, 그럼에도 모든 면에서 유신에 밀렸다. 그가 뛰어넘기에는 유신은 너무나도 백그라운드가 막강했다. 그래서 화랑도 유신이 먼저 했다.

하지만 유신한테 뒤졌지 당대 신라를 통털어 염장 역시 막강한 후광을 등에 엎은 금수저 출신이었다. 또 다른 여주女主 등장은 눈뜨고는 못 봐주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비담과 염장을 일망타진하는 데 김유신을 보좌해 공을 세우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 전에는 선덕여왕 즉위와 더불어서는 나라 곳간지기를 맡아서 더욱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 

“선덕이 즉위하자 조정에 들어가 조부調府의 (장관인) 령令이 되어 유신과 춘추한테 재물을 공급해 주고 또 한 사적으로도 치부를 했다. 그때 사람들이 공의 집을 가리켜 수망택水望宅이라 하니, 금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홍수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돈을 물쓰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렴장이야말로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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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긁어 모았고 그렇게 펑펑 썼다. 하지만 그는 냉혹한 투자자였다. 그가 투자한 데가 김유신과 김춘추이라는 블루칩이었다는 데서 그의 투자 면모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요컨대 현재와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면 되겠다. 

조부란 요즘의 재정경제부나 국세청 정도라고 보면 되겠고 일본을 예로 들자면 대장성이다. 그런 대장성 장관을 하면서 나라에서 긁어들이는 각종 세금과 물자 중 일부를 빼내서 실력자들한테 주고, 자신도 삥을 뜯었으니, 그러고도 이렇다 할 처벌을 받은 흔적은 없으니, 뭐 당대에 법률이 없어서겠는가? 누구도 건딜 수 없는 권력자니 그리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랬다. 렴장은 언터처블 카지노 노얄이었고 차무식이었다.

저 수망택은 삼국유사에서 말한 신라시대 대표 캐피탈 금융집안 중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그에 의하면 35개 택인가가 있었다고 한다.

한데 이런 대부호 금융재벌 염장을 삥뜯어 먹는 이가 또 있었다. 흠순이었다. 김유신의 동생 그 흠순 말이다. 

“공은 재물에는 어두워 늘 염장공한테 구했다. 염장공은 웃으며 ‘네가 나를 곳간으로 삼는데 내 아이를 기르지 않는다면 나는 손해다’라고 했다. 공은 이에 여러 아들한테 염장공의 딸을 아내로 맞게 했으니, 그 딸들이 염장공의 재산을 나누어 시집오게 했다.”

보다시피 그는 철저한 장사꾼이었다. 손해 보는 투자는 하지 않았다. 돈을 대준다 해서 무턱대고 준 것은 아니었으며 첫째 명분이 필요했고 둘째 반대급부가 있어야 했다. 이 반대급부가 바로 이자였다. 그 이자가 자기 딸들을 흠순의 아들들한테 출가시키는 일이었다. 

나아가 이는 왜 염장이 김유신과 김춘추한테 스폰서 역할을 했는지를 폭로한다. 염장은 저들이 당대 혹은 미래의 권력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는 저들한테 보험을 들어야 했다. 

흠순은 이런 형이 몹시도 부러웠다. 어랏? 형님은 스폰서가 있네?  

그 역시 달려가 형님 저도 스폰해주세요. 제가 유신 형님보다 모자란 게 뭡니까?

하지만 염장한테 흠순은 달랐다. 급이 모자랐다. 그래서 스폰을 하면서도 고이율 이자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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