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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매머드를 찾아 떠난 일본길] (2) 들이민 기증 확약서에...

by taeshik.kim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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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 상아를 잡은 박희원 회장(오른)

 

6월의 마쓰모토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인 이곳을 왜 아시아의 알프스라 하는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고원지대라 그런지 꽤나 더운 계절이었는데 마쓰모토에 들어서니 기후가 나한테는 아주 좋았다. 읍내에 들어서 역 인근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일본 국보로 지정된 송본성松本城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아차 하다가 일에 밀려 이런 곳을 놓치고 오는 일이 십상이라 서둘러 봐두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송본성은 호텔에서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했다. 다만 해가 지려 하는 시각이었으므로 일행은 발길을 서둘렀다. 여타 중세 혹은 근세 일본 성이 그렇듯이 이곳 역시 성루와 성벽 바깥을 두른 해자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쉬움이 있어, 그리고 해질녘이라 내일 새벽에 다시 들려보리라 하고는 박희원 회장을 만나러 갔다.

 

기증하면서 보낸 매머드 화석. 박희원 회장 친필이 보인다.



이튿날 새벽, 나는 혼자서 쏜살 같이, 불알 떨어질 듯이 다시 마쓰모토 성을 다녀왔다. 

박 회장은 작년 아마 만 68세였다고 기억하는데, 훨씬 젊어보였다. 키는 170인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컸다고 기억한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강한 인상이라 야쿠자 두목 같은 느낌도 났다. 모르겠다. 혹 젊은 시절엔 그런 조직에 몸담았었는지는.

그 이튿날인가 박 회장을 포함해 일행이 온천을 했다. 벌거벗은 그의 몸 어디에도 문신은 없었으니, 야쿠자는 아닌 듯했다.

그는 재일교포 2세로 안다. 재일교포 특유의 억양은 두드러졌지만 한국말은 아주 잘한다. 조금씩 알아보니 애초에는 조총련 소속이었다. 지금도 조총련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송본은 나가노현 소속. 이곳에 조선인 학교가 있다. 체류 기간 박 회장은 굳이 이 학교에 우리를 데리고 갔다. 가서 보니 학교를 세우는데 박 회장이 적지 않은 지원을 한 모양이다. 손자가 있었는데, 하굣길에 이 손자를 직접 픽업하는 모습도 봤다. 

 

매머드 화석들



이튿날인 16일 본격적인 매머드 화석 조사가 있었다. 우선 읍내 그의 회사 사무실로 갔다. 그 사무실 한 공간이 온통 매머드 뼈다구였다. 화석은 미닫이식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시설에 칸칸이 가득가득 담겨 있었다. 그 막대한 수량에 질겁했다.

화석은 각종 부위를 망라했다. 두개골도 있었고, 이빨도 있었고,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것들을 수집한 내력을 박 회장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임종덕 연구관은 전문가적 해설을 곁들이기도 했다. 어금니 뼈인지 무슨 뼈를 보고는 나이는 어느 정도다 등등을 말이다.

러시아에서 직접 매머드 뼈를 발굴한 이야기도 박 회장은 곁들이기도 했다. 그 시체는 어땠는지 내가 궁금해 묻기도 했다. 그의 말인즉슨 매머드 시체는 냄새가 그리 지독하댄다. 매머드 살을 직접 먹어본 사람 얘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듯해서 그것도 물어보니 “냄새 나서 못 먹어”라는 한 마디 말로 잘라냈다.

이후 같이 움직이면서 매머드 복제 재생 프로그램 계획도 물어봤다. 코끼리에 무엇인가를 심어서 매머드 복제하는 그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외신을 읽은 적 했기 때문이다. 하도 전문적인 내용이라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박 회장은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매머드 화석들



내가 이런 질문을 했던 까닭은 그의 감식안을 알고자 하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체류기간 내내 그가 하는 말을 들으니, 박 회장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매머드 전문가였다. 관련 서적 논문은 거의 다 탐독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석 보유 상태를 돌아보고는 이 회사 사무실에서 조 실장이 기증 건 얘기를 꺼냈다. 기증 확약서는 미리 준비해갔으며, 그에다가 박 회장 도장을 받을 예정이었다. 나는 내심으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터였다. 뭔가 박 회장이 불만이 있었다. 불만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기증 확약서를 앞에 두고 박 회장은 “내가 왜 기증하냐”고 발을 완전히 뺐다. 그러면서 여기 이왕 왔으니 구경이나 잘 하고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 지금은 아주 간략히 말하지만, 이건 심각한 상황이었다.

 

대왕와사비 농장



나야 출장이 아닌 휴가가 되었기에 이리되건 저리되건 상관이 없었지만, 이미 기증 확약서를 받아오겠다고 나선화 문화재청장에게 보고까지 하고 온 직원들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문제는 단순히 박 회장이 튕겨보는 것인가였다.

이날 만남에서 내 느낌은 단순히 튕기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안이 벙벙한 천연기념물센터에서는 박 회장을 계속 설득하고, 동행한 이일범 동물팀장도 “나 이번에 빈손으로 못 돌아가. 승님이 책임 지슈”라는 말 등으로 애원하고 협박까지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첫 대면이었기에 우선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다만 계속 함께 움직이면서 지켜본 바로는 “섣불리는 기증 안 한다” 이것이 내 결론이었다. 관건은 도대체 박 회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것을 간파하고, 그것을 충족시켜 줘야 했다. 적어도 내 판단은 그러했다. 

 

대왕와사비 농장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한가롭지는 않았다. 바빴다.



회사 사무실에서의 담판은 일단 결렬됐다. 박 회장은 어디를 가보고 싶냐고 했다. 어디가 유명하냐 했더니 일본 최대의 와사비 농장이 이곳에 있다 했다. 오잉? 와사비? 기분도 꿀꿀한데 왔따다 싶어 그곳을 가자고 했다. 그래서 와사비 농장을 갔다.

생판 처음으로 와사비 풀을 본 순간이었다. 이곳을 오가면서, 그리고, 와사비 농장을 돌면서도 많은 설득이 있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다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간파한 게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기증은 한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게 있다. 그 원하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이었다. 이후 나는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염탐질을 했다. 


와사비 농장 인근 소바집 소나무숲. 장관이었지만, 속은 쓰렸다.



와사비 농장을 갔다가 점심은 유명산 신사 근처 소바집에서 해결했다. 일전에 페이스북에 잠깐 포스팅했듯이 그토록 많은 메밀국수를 배터지게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이곳은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는지 냉면 한 소쿠리가 나왔다. 먹어도 끝이 없었다. (201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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