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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불나국弗奈國 vs. 불내후不耐侯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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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가 불나弗奈 혹은 불내不耐의 근거지였을 것이다.

 
고려사 본기와 고려사절요를 보면 현종顯宗 11년(1020) 6월 19일 기해己亥에 이르기를 

불나국 추장 사가문沙訶門이 여진의 노울달奴鬱達來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쳤다. 

己亥 弗奈國酋長沙訶門遣女眞奴鬱達來, 獻土物.

라 했거니와, 이 불나국弗奈國이 다른 데 보이지 아니해서 그 정체를 추정하기 매우 곤란하거니와,

나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왜 자꾸만 이보다 8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 보이는 불내不耐가 어른어른하는지 모르겠다. 

삼국지三國志 권 제30 위서魏書 30 동이전東夷傳 예濊에 이르기를

(위나라) 정시正始 6년(AD 245, 고구려 동천왕東川王 19)에 낙랑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와 대방태수帶方太守 궁준弓遵이  [단단대單單大]령領 동쪽 예濊가 구려句麗(고구려)에 복속하자,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니 불내후不耐侯 등이 고을을 들어 항복했다.

[정시] 8년(AD 247, 동천왕 21)에는 [위魏] 조정으로 와서 조공하므로, (그 군주를) 불내예왕不耐濊王으로 책봉했다. [불내예왕不耐濊王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계절마다 군郡(낙랑?)으로 와서 조알朝謁했다. 두 군郡(낙랑·대방)에 전쟁이 있어 조세租稅를 거둘 일이 있으면, [예濊 백성한테도] 공급케 하고 사역케 하니 마치 [군] 백성처럼 다루었다.

○ 正始六年(245), 樂浪太守劉茂·帶方太守弓遵以領東濊屬句麗, 興師伐之, 不耐侯等擧邑降. 其八年, 詣闕朝貢, 詔更拜不耐濊王. 居處雜在民間, 四時詣郡朝謁. 二郡有軍征賦調, 供給役使, 遇之如民.
 
둘 사이에는 물경 800년에 달하는 간극이 있지마는 고려시대 불나弗奈가 삼국시대 초기 불내不耐가 아닌가 하는 심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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