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쉽게 볼 수 없다.
어떤 분야이건 자기 일을 삼십년씩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진지하게 자신의 일에 몸바쳐 몰두했다면
삼십년 후에는 그가 도달한 지점은 쉽게 볼 수 없다.
어쨌건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칠십년이 넘었고
또 해당 분야 수준도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한다면
귀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일을 삼십년씩 진지하게 한 사람들이라면
상식에 준하여 하는 비판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 하는 부분을 잘 알 것이다.
사실 전문가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나오지는 않는다.
나올 질문이 뻔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논문을 투고하면 제대로 된 심사자가 심사평을 낸다면
그 심사평의 80-90프로는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필자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논문을 쓰고 투고하고 심사평을 받는 일을 필자처럼 한 30년 하다 보면
투고하면 대개 심사평이 뭐를 고치라고 올 거라고 대개 예측하고 실제로 그대로 오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가장 뼈 아파 하는 질문은 전문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식에 준한 질문에서 온다.
전문용어와 그 분야에서 통용되는 논리로 층층이 쌓아올린 이야기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한마디면 수십층짜리 건물이라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
전문인들은 상식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학계의 논리나 전문적 주장이라 해도
상식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상식은 대개 비전공자라거나 아마추어라는 외투를 입고 오는데 너무 겉모습이 허름하여 그 내용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사실 무술 대련 비슷한 학계 내부의 평에 비해
상식에 기반한 비평은 열 중 아홉은 헛소리일 수 있지만
그 나머지 열 중 하나가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도장 하나를 풍비박산할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식에 기반한 비평은 그것이 전문가에서 나오건 아마추어에서 나오건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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