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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서원철폐 : 1864년

by 초야잠필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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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려 전국 서원을 다 문닫게 하고 딱 47개소만 남긴다. 

이 서원철폐령은 당시까지 서원의 운영이 당파를 만들고 주변 백성에 대한 수탈의 진원지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것은. 

서원은 당파의 온상이기도 했겠고, 수탈의 폐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겠지만 

여기는 어디까지나 교육기관이기도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후기, 향교가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상황에서는 서원이야말로 지역사회 교육의 중심이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문제는 이런 서원이 철폐된 후, 그 교육기관 공백을 어떻게 대책을 세워 보완했다는 이야기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서기 1864년 이후 조선은 서원이 철폐되고 사실상 서당 이외에는 교육기관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들어갔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은 문화혁명이나 다를 바가 없다. 

서원철폐령이 떨어진 후 조선의 교육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나와있지 않은데, 

우리의 서원 격이라 할 일본의 번교가 메이지유신 이후 상당수가 중학, 고등학교로 전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공과는 연구되고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 많다 하겠다. 

여기서 왕조실록에는 서원 철폐후 조선의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부호군(副護軍) 박규찬(朴奎燦)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지난번의 이른바 동학(東學)은 국조(國朝) 이래로 없었던 괴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온 나라를 계속 소란스럽게 만들었으니 이 교(敎)가 윤리를 파괴하고 강상(綱常)을 어지럽히는 것이 불교(佛敎)나 노자(老子)보다 심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유학(儒學)이 흥하면 이교(異敎)는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고 저 일종의 사악한 기운은 다스림을 기필(期必)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선현(先賢)들의 서원(書院)과 사당(祠堂)은 실로 성균관(成均館)을 모방한 것으로 본래 어진 선비를 존중하고 유학을 지키며 학문을 강론(講論)하는 곳인데, 지금 열에서 아홉은 허물어 버렸으니 선비들의 추세는 우매해 가고 풍속은 야박해져서 제사지내는 예식과 서로 사양하는 기풍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해조(該曹)에 하문(下問)하고 널리 공의(公議)를 모아 세워야 할 서원을 다시 세우고 팔도(八道)의 많은 선비들에게 포고하여 사문(斯文)을 일으켜 세운다면 비록 어리석은 일반 사람들이라도 다 공자(孔子)의 도를 외우고 본받을 줄 알고 전하의 은택을 읊으며 노래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의 이 글을 묘당(廟堂)에 내려 보내 하문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에는 성균관이 있고 가정에는 글방이 있어서 유학(儒學)을 강론(講論)하고 있는데 어찌 장소가 없는 것을 걱정하겠는가? 지금 이 상소에서 청한 것은 경솔히 의논할 문제가 아니다."

하였다.
 

상소의 내용은 서원이 학문을 강론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데 대해,

고종이 비답하기를 "나라에는 성균관이 있고 가정에는 글방이 있는데 서원이 왜 필요하냐"는 식의 대답을 하고 있다. 

이 대답을 보면 서원철폐로 사실상 조선의 교육제도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대원군과 고종은 서원은 철폐하여 전국에 천여 개나 되던 왕국의 교육기관을 모조리 폐쇄해버렸지만 

정작 이를 대체할 교육기관은 전혀 만들지 않은 것이다. 

조선은 망국으로 가는 길목에 성균관과 서당 외에는 교육기관이 사실상 거의 없는 상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조선왕국은 교육기관이 성균관을 빼면 서당만 남아 있는 기형적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그 자체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교육제도를 일체 새로 두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원군은 당파와 지역민에 대한 폐해를 이유로 삼았지만 서원철폐로 조선은 전성기에 1000개에 육박하는 교육기관의 일체를 상실한 채 개화기를 맞아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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