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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필사자인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 유작 중에 겉표지에 ‘상장돈장上狀敦牂’이라 쓴 족도族圖가 있다. 이 역시 필사본으로 화랑세기 시대, 화랑세기 주요 등장인물들 족보를 그림으로 묘사한 문헌이다.
화랑세기와 같은 필사지인 실록편수용지를 이용한 필사본으로, 제목의 상장돈장은 고갑자古甲子니, 우리에게 익숙한 십간십이지로 표시하면 경오庚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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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오년은 실록편수용지와 박창화의 서릉부 근무 시점을 고려할 때 1930년이다.
따라서 상장돈장은 이 족도를 박창화가 필사, 혹은 완성한 시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상장돈장은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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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풍월주를 필두로 하는 화랑세기 주요 등장인물의 모든 계보가 나온다. 이 계보는 그 선대는 물론이고 후손 관계도 빠짐없이 수록됐다.
둘째, 이 상장돈장을 통해 현존 화랑세기 필사본의 훼손 결락의 상당 부분을 보충한다.
지금 남은 화랑세기는 불완전본이다. 훼손율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점은 적어도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다는 점이다. 내 짐작으로는 원전 화랑세기의 3분의 1도 남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상장돈장은 박창화가 참조한 원본 화랑세기를 원래 모습을 재구축하는 지남철과 같은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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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계보에 관한 한, 현존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누락된 상당 부분을 우리는 이 상장돈장을 통해 보충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상장돈장은 뿌리가 어디인가? 이 역시 화랑세기와는 본래 세트인가? 이는 알 수 없다. 나는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보지만, 이 족도가 본래 화랑세기와 세트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계보라는 점이다.
이는 남당 박창화가 필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족보가 박창화가 그린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당연히 그가 참조한 화랑세기의 그것을 토대로 해서 그린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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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상장돈장에는 현존 화랑세기에는 보이지 않는 계보 역시 잔뜩 등장한다. 이 보이지 않는 계보가 등장한다 해서 화랑세기 필사본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누누이 말하듯이 현재의 화랑세기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현존 화랑세기에 안보이는 계보로, 상장돈장에는 보이는 계보는 틀림없이 원래는 있다가 떨어져 나간 화랑세기에 있었던 내용이다.
선화공주는 현존 화랑세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데 이 상장돈장이라는 족도에는 엄연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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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장돈장에 등장하는 선화공주는 어떤 모습인가?
이걸 검토하면 실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미륵사지 봉영사리기가 폭로한 백제 무왕의 왕비와 삼국유사의 선화공주에 가로놓인 거대한 모순이 일거에 봄눈 녹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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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3) 미륵사 봉영사리기로 잃은 것과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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