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신라의 성, 조선의 성, 아전, 그리고 부실 공사

by 초야잠필 2022. 10. 11.
반응형

영월 정양산성. 도르래를 성 안쪽에 설치해 물을 조절했다.

 

제목 그대로다. 앞에서 잘 쌓은 신라성을 봤다. 촌락문서가 실상을 반영한 장부로 아마 이 장부에 기반하여 부역을 설계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완성된 것이 신라의 성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요즘은 워낙 정비사업 후에 갑자기 유적이 최신식 건물이 되는지라 요즘 복원한 신라성들은 뭔가 과다한 복원사업의 결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필자는 삼국시대 신라가 쌓았다는 영월 왕검성 (정양산성)을 복원전 조사차 올라가 실견한 적이 있는데, 신라의 산성은 확실히 동시기 다른 지역의 성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 산꼭대기에 그 규모의 산성을 쌓은것도 그렇고. 막돌을 일정한 크기로 쪼개서 포개어 쌓은 모습 등 매우 인상적인 성이었다는 생각이다. 각설하고, 신라의 산성은 처음 축성할때부터 그런 형태였다는 것. 

 

두번째로 조선시대의 성을 보자. 도대체 이 시기에는 왜 성 쌓기가 그렇게 허술한 모양이 된것일까? 

 

생각해 보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우선 부역에 동원할 사람들을 기록한 장부를 만들어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장부를 만들지 않고 "가라장부"를 만들어 놓은것이다. 물론 이 가라장부의 댓가로 뭔가 금전적인 수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전이라면 월급도 없고하니 가라장부가 그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었을수도 있겠다. 어차피 나라에서 월급한푼 안 주고 부려먹는 건 이렇게 하라는 소리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장부 조작은 무료봉사하는 아전의 주 수입원이 되어 채워야 할 사람이 빠지고 빠져야 할 사람이 들어가 있는 어처구니 없는 꼴이 되었을터.

 

조선후기의 각종 호구 기록에 엉터리가 많은 것은 단순히 그 장부 작성자가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정작 때가 되어 그 장부에 입각해서 성을 쌓겠다고 사람들을 모아 보면, 택도 없는 할매 할배 애들만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꼴이 되었을 터. 이런 양반들 더러 성을 쌓으라고 하면 돌을 제대로 깎아 쌓으라고 하겠는가, 튼튼히 쌓으라고 하겠는가.

간신히 하라고 한 구색을 맞추고 공사를 끝낼수 있다면 다행일터. 그러니 성이 제대로 쌓일 리가 없다. 

 

결국 성쌓기를 부실공사로 만들면서 그 돈으로 아전 월급을 주어버린 꼴이 되었지 싶다. 조선시대의 허술한 성은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부실한 성은 부실한 장부가 원인이고 부실한 장부가 만들어진 원인은 결국 받아야 할 돈을 못받아 알아서 챙겨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는 물론 전적으로 내 상상의 산물이다만, 조선시대에 아전이 월급이 없었다는 점, 조선시대의 호구 관련 장부가 죄다 엉터리라는 점, 그리고 조선시대 성쌓기 치고 제대로 된게 없다는 이 세 가지를 놓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뭔가 아구가 딱딱 맞는 부분이 보인다는 점은 참 부정하기 어렵도다. 

 

가렴주구, 부실공사 없는 청렴한 관리를 만드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받을 사람에게 줄 거 제대로 주고 거짓없는 정확한 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임란 이후 한국과 일본의 남아 있는 자료를 보면 우리 쪽 호구 자료들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는데 (뭐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시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당시 일본에게 이미 패하고 들어간 것이다. 

 

조선시대 호패.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