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한국 신석기시대. 처음 단계에 휴경-화전으로 시작된 잡곡농경은,
그 후 어떤 변화를 거쳤을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화전민 촌락에는 농경의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첫째는 화전하지 않고 경작 관리하는 땅과 화전하는 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화전민.
이 경우에는 비화전 경작지에 거주지가 건설되고 화전하는 땅에는 가끔 올라가 보게 된다.
둘째는 비화전 경작지 없이 오로지 화전만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화전을 따라 옮겨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대개 한번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지으면 4-5년 후에는 옮겨야 했다 하므로
신석기시대 화전민도 4-5 년 간격으로 옮겨다니며 휴경-화전을 반복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초의 단계는 순화전민의 단계였을 것이고,
그 다음 단계가 비화전 경작지를 갖고 영구정착촌을 건설하며 화전은 부업 정도로 하게 되는 경우가 되겠다.
그리고 그 다음은 도작의 도래로 화전이 거의 사라지는 단계일 것이고.
첫번째 단계, 순화전민의 단계.
우리는 이것을 "수럽채집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왜 영구적인 거주지, 촌락이 아닌 것 같은데
농작물 탄화물이 계속 나오는가?
이것은 계속 옮겨 다니는 수렵채집민이
여가 시간에 잡곡 농사를 지었기 때문인가?
그것이 아니고,
이유는
이들이 순화전민이었기 때문이다.
*** previous article ***
화전민과 매우 비슷했을 한반도 초기농경민
화전민과 매우 비슷했을 한반도 초기농경민
일전에 김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한반도 신석기시대, 초기 잡곡농경민은 농경의 최초 단계는 화전 비스무리 했을 것이다. 화전의 특징이 무엇인가? 주기적으로 옮겨
historylibrary.net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전과 나무뿌리 (5) | 2024.09.05 |
---|---|
화전민은 몇 년 만에 원래 위치로 돌아왔을까? (7) | 2024.09.04 |
화전민과 매우 비슷했을 한반도 초기농경민 (7) | 2024.09.04 |
틀림없이 있었을 한국 신석기시대 휴경 (7) | 2024.09.04 |
산나물을 어떻게 볼것인가 (8) | 2024.09.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