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신작로가 낸 능산리고분, 폐결핵이 준 선물

by taeshik.kim 2023. 1. 15.
반응형
後藤 慶二(ごとう けいじ、1883年10月29日 - 1919年2月3日)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능산리 고분군 출현은 부여-논산 구간 신작로 개발의 부산물이다.

한데 재미있는 점은 능산리 고분군이 한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다.

이곳에 선산을 조성한 지방 유지의 압력 때문에 비밀이 새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든 이런 비밀을 군청에서 접한 세키노 일행은 능산리 고분군 현장으로 간다. 이때가 1916년 7월이라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계절이었다.

이 조사에 동행한 이를 세키노는 “야쓰이 문학사와 고토後藤 공학사”라고 한다. 야쓰이는 1909년 조사에서도 동행한 인물이다.

한데 이번에는 고토라는 사람이 새로이 동참했다. 고토는 누구일까?

그는 고토 게이지(後藤慶二·1883~1919)다.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는 일본 건축사에서는 도쿄의 도요타마감옥豊多摩監獄 설계자로 유명하다.

도요타마감옥豊多摩監獄


도쿄 태생으로 아버지가 물리학자인 고토는 1906년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해 1909년 졸업했다. 졸업 연도로 보면 무리야마와 동기인 듯하다.

졸업 뒤 사법성에 들어가 영선기사營繕技師가 된 그는 1915년 폐결핵 때문에 사법성을 사직하고는 요양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와 총독부 촉탁이 되어 세키노의 고적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가 조선에 남긴 행적 중에 눈여겨봐야 할 것은 1915년 대동강 유람선인 낙랑환樂浪丸 설계자라는 점이다.

辰野金吾博士 作品集成絵図」1916年



요컨대 고토에게 능산리 고분군 발굴은 폐결핵이 준 선물이었다. (2017. 1. 15)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