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을 직업으로 살아온 지가 40년이 지났다.
읽고 번역한 것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한문자료들이다.
신입사원일 때에 읽은 게 중종실록이었다.
선배들은 수시로, 조선시대가 오늘날(40년전 그때)보다 언로言路가 더 열려 있었다고들 하였다.
언로는 말길이라는 뜻인데 요즘 개념으로는 언론의 자유 같은 것이다.
그 근거로 드는것은 실록에 수없이 나오는 대간들 건의문이었다.
상소, 차자 등등, 임금에게 대놓고 바른말을 하는, 할 말을 다하는, 강직한 공무원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근무하는 엘리트 청년들의 건의문.
여차저차해서 그 일은 시행하면 아니되옵니다. 여차저차해서 우의정을 처벌해야 합니다...
그 실록 기록물만 보면, 참말로 목숨 걸고 바른말을 하는 멋진 청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그런가 하고 그뒤로 의문을 품고 실록을 읽어 보니,
위 세 관사에 근무하는 자들은 비록 낮은 관원일지라도, 아버지거나 할아버지거나 외할아버지거나 스승이거나 아니면 처삼촌이 고관대작이거나 전임 고관대작들이었다.
다시 말해, 쎄게 임금을 한 방 먹이고 저 국토 변두리로 귀양을 가더라도, 오래지 않아 별을 달고 다시 복권이 되었다.
귀양가서 정말로 죽거나 영구 폐기되는 사람은 그런 배경이 없거나 정파를 위해서 스스로 이용당했거나 그런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
이상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 선생 글이다.
언로가 열려? 언론의 자유가 있어?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멋 모르고 진짜로 언로가 있는 줄 알고 달라들었다가 목 달아난 사람 천지다.
그 언로는 철저히 사전에 기획되었고 사전에 음모되었으며, 그 기제에서 작동했다.
그 작동하는 기제에서 벗어난 자가 목이 달아났다.
왜? 지켜줄 사람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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