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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4] 태胎를 목에 두르고 태어난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by taeshik.kim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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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국사 탑배

 
충남 서산瑞山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普願寺址에는 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碑이라는 고려 초기 비석이 있으니, 고려 초기 화엄종 승려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의 생애와 업적을 새긴 것이다.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는 물론이고 그 업적을 기술한 부분이자 몸통에 해당하는 비신을 완비된 비석으로 비신 전면 아래쪽이 약간 훼손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보존상태가 좋다. 그 곁에는 당연히 그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 있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글씨는 한윤韓允이 쓰고 김승렴金承廉이 새겨 그의 입적 후 3년 뒤인 고려 경종 3년, 서기 978년에 세웠다.

내용은 법인이 화엄을 배우고 태조가 시행한 승과를 주관하고 기도하여 광종을 낳게 했으며 재해에 반야를 강설하여 물리치기도 하고

화엄경을 사경하여 강설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했으며 광종이 즉위해서는 나라를 교화하는 법을 강설하며 태자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제목에 해당하는 제액題額은 가야산迦耶山 보원사普願寺 고故 국사國師 제증시制贈諡 법인法印 삼중대사지비三重大師之碑라 했으며, 

그 본문 첫 구절 시작을 

고려국高麗國 운주運州 가야산迦耶山 보원사普願寺 고故 국사國師 제증시制贈諡 법인法印 삼중대사 보승지탑비명三重大師寶乘之塔碑銘 병서幷序

라 했다.

저에는 이런 구절이 보인다.

대사는 법호法號가 탄문坦文이요 자는 대오大悟이며 속성은 고씨高氏로 광주廣州 고봉高㷭 사람이다. (중략) 건녕乾寧 7년, 용집군탄龍集涒灘 8월 14일 새벽 동틀 무렵에 탄생하였다. 대사는 태어날 때, 태胎가 목을 감아 드리운 것이 마치 방포方袍를 걸친 듯했다.

乹寧七年龍集涒灘秋八月十四日天欲曙誕生大師其胎遶頸而垂如著方袍 (하략)
 

기존 주석들을 토대로 한두 군데 부연하자면, 그가 태어난 건영乾寧 7년이란 신라 효공왕孝恭王 4년, 서기 900년이라 건영은 당唐 소종昭宗 때 사용한 연호이기는 하지만 4년간 사용하다 폐기되고 광화光化로 바뀌었으니,

중국 본토에서는 저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착란이 혼란한 당시 동아시아 사정을 반영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정확히는 광화 3년이라 해야 한다. 

용집龍集이란 글자 그대로는 용이 몰려든다는 뜻으로, 태세太歲라는 뜻이라, 어느 해에 해당한다 할 때 끌어가는 말이며, 군탄涒灘이란 고갑자古甲子로 신申에 해당한다.

저 해는 경신년庚申年이라 고갑자로는 경庚에 상장上章까지 같이 써서 상장군탄上章涒灘이라 해야 하지만, 비문에 다 새기기에는 번다하다 해서인지 아니면, 실수로 누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리 간단히 표현했다. (고갑자표는 저 고딕을 클릭하라.) 

방포方袍란 사각 모양 가사袈裟, 곧 스님이 걸치는 옷 법복法服이라는 뜻이니 태어날 때 이미 스님이 될 운명이었다는 뜻이다. 

지금 스님들이 걸치는 가사를 방포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로 보아 저 시대 법복은 각이 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래와 같은 옷들을 방포라 하는 듯 하다. 


 
저 모습을 상상하면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저럴 때 보통 사산死産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기적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예서 주시할 대목은 저 태胎다. 이를 흔히 영어로는 플러센타placenta라 하는데, 이건 내가 아이를 낳아본 경험 있는 여성이 아니라서 자신은 없지만 우리가 보통 태라고 하면 탯줄 umbilical cord 아닌가 하거니와, 저 플러센타 개념이랑 조금 다르지 않나 한다. 
 

우리가 말하는 태를 보관한다 할 때는 탯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건 내가 자신이 없다.

 
저 탯줄을 어찌했겠는가?

당연히 태를 소중하게 보관했으며, 이를 안태安胎 혹은 장태藏胎라 하며, 그것을 주로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므로 그것을 담은 그릇을 태호胎壺 혹은 태항아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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