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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퇴계와 강항이 일본에 전해 준것

by 초야잠필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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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강항이 일본에 전해 주었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주자학인가? 

퇴계와 강항이 일본에 전해 준 것은 "주자학"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주자학에의 입도의 문"을 알려준 것이다. 

퇴계건 강항이건 주자학 이론에는 벽돌 하나도 더한 것이 없다. 

또 일본인들이 주자학 이론을 처음 접한 것도 퇴계나 강항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일본인들 역시 주자학 이론은 그 이전에 이미 전해 듣고 있었다. 

왜? 

주자학을 접한다는 게  별 게 아니다.

사서집주만 수입해도 주자주가 붙어 있기 때문에 성리철학은 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일본에서 주자학은 가마쿠라 시대에 전래되었다던가 하는 주장이 있는데 바로 그런 의미다.  

당연히 중국에서 사서집주만 들고 와도 주자학은 전래된다. 그 책에 그렇게 들어가 있고 책을 보는 한 주자주는 읽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본다고 쉽게 그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개 주자주를 통해 처음 성리철학을 접하게 되면 이것이 공리공론, 뜬구름 잡는소리, 좋은 말만 적어 놓은 공자님말씀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주자주가 그리는 성리철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구조화한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렇게 되더라도 성리철학 전체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이 조선에서 전해 받은 것은 "성리학"이 아니다.

바로 "성리학으로 들어가는 입도의 문"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후지와라 세이카가 처음 강항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성리철학의 개념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읽어도 혼란스러운부분이 많아 확신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막힌 부분을 뚫어준 것이 강항이다. 

퇴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성리철학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한 쪽집게 강사가 퇴계다.

따라서 주자학에 대한 이해 자체가 낮은 시절, 퇴계는 성리철학으로 들어가는 입도의 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퇴계와 강항이 일본에 전해 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잘 모른다는 것은 실제로 다산이 어떤 면에서 훌륭하고 어떤 면이 오해인지 우리가 정확히 모르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 둘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에도시대 주자학을 조선 선비가 전해주었다"라는 정도의 논리 정도로는 절대로 조선과 에도시대 당시 구체적 상황을 알 수 없다 (c)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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