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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전4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 (3) 큰 갈등이 없던 두 학교, 당대 최고 의료스타 백인제는 의전 출신 앞에서 경성의전과 경성제대의 차이를 이야기했지만, 일제시대를 보면 이 두 학교 출신 사이에 그다지 큰 갈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를 보면, 의전과 제대는 교육기간과 학위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사회로 진출하여 의사로 활동하는 단계에서는 양자간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성의전 졸업생 대부분은 개업을 택했고 지금과는 달리 소규모 개업의가 대부분이었던 상황을 보면, 사회로 진출한 후에는 서로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다. 중대형병원만이 살아 남아 의사와 환자가 거대한 병원에서 서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경성의전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개업의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교수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백인제 선생이.. 2023. 9. 23.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 (2) 가깝고도 먼 당신 일제시대에 경성의전과 경성제대 관계는 묘하다. 원래 경성제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경성의전은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한제국 의학교가 나라가 망한 후 총독부 의학강습소로 바뀌었고 이것이 1916년, 관립학교인 경성의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성의전은 기초의학 2년, 임상의학 2년으로 이러한 커리큘럼은 필자가 대학 다니던 80년대까지도 그대로 였다. (지금은 필자가 재학하던 때에 비해 임상의학 강의가 늘고 기초의학이 줄었다) 쉽게 말해 경성의전은 해방 후 예과 없이 본과만 있는 의대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의전이라 연한이 대학 의학부에 비해 짧지만 전문 교육은 둘다 4년으로 동일했다. 당연히 일제시대에도 의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경성의전에는 조선바닥의 수재는 다 모여들었다. 이것이 1924년.. 2023. 9. 22.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 (1) 고졸과 대졸, 그 건너기 힘든 간극 작금의 육사 논란이 서울대병원-세브란스 병원의 뿌리찾기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쓴 바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를 조금 써 볼까 한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두 학교는 해방후 국대안에 의해 합쳐져서 국립서울대 의대가 되었다. 서울대병원은 현재 기원을 제중원, 서울의대는 대한제국 의학교까지 올려 잡는데, 이 중 대한제국 의학교까지 이어지는 연혁은 경성제대 쪽에서는 소급이 안 되고, 경성의전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바로 경성의전--총독부 의학강습소--대한제국 의학교의 순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사이에 국체가 한번 바뀌고 (대한제국--일본총독부), 이름도 계속 바뀌었지만 대체로 대한제국 의학교에서 경성의전까지 이어지는 맥은 병원 쪽보다는 훨씬 뚜렷한 편인 것 같다. 최소한 병원처럼 대.. 2023. 9. 22.
일제시대 아웃사이더 사실 이것은 일제시대 조선 학계의 상황 전반과 관련된 일인데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일제시대 학계마다 조선인은 거의 아웃사이더였다. 전술한 역사학의 경우 해방이후 서울대 국사학과의 주축이 되는 조선인학자들은 예외없이, 거의 모두 일제시대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지금이니 양자를 대척점에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 일제시대 당시에는 조선인 학계란 일본인 교수들 입장에서 치지도외였을 것이다. 이병도 등 사학자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그러할진대 이것도 아닌 소위 국학을 연구하는 양반들 이야기는 그러니 제대로 먹힐리가 없다. 조선인학자들이 발표할 지면은 조선, 동아 등 신문을 빼면 아마 진단학보나 각종 동인지 정도가 전부아니었을까. 이것은 의학도 그렇다. 경성제대 의학부, 경성의전 등이 거의 일본인 교수들이었기 때문에..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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