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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교4

아이지현愛知県 제4중학이 된 번교藩校 시습관時習館 1752年(宝暦2年) - 藩校時習館、藩主松平信復により、城内の八丁小路(現在の豊橋市八町通)に設立。 1806年(文化3年) - 「時習館規条」制定。 1872年(明治5年) - 藩校時習館廃止。 1893年(明治26年) - 私立補習学校時習館(愛知県立時習館高等学校の前身)設立。藩校時習館の名を借りて称した。 1900年(明治33年) - 愛知第四中学校(ナンバースクール)へ改名。 1948年(昭和23年)10月 - 豊橋時習館高等学校の校名に改称し、「時習館」の名称が復活する。 1956年(昭和31年) - 愛知県立時習館高等学校に改称。 아이치현에는 미카와요시다 번이 있었는데 이 번의 번교藩校를 논어의 글귀를 따 시습관時習館이라 불렀다. 번교가 설립된 시기는 1752년. 메이지유신후 폐지되었다가 사립학교로 전환되었고, 1900년에 아이치현의 제4중학.. 2023. 8. 11.
번교의 근대교육기관으로 전환의 사례: 요네자와번 흥양관 일본의 에도시대 번교藩校가 근대교육기관으로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요네자와번米沢藩에는 에도시대, 번사藩士를 교육하는 번교가 있었는데 이름을 흥양관興譲館이라 하였다. 1697년, 공자를 모셔 석전釈奠하는 학문소를 사적으로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1776년부터 요네자와번의 공식적 교육기관이 되었다. 공자 제사와 교육 기능을 겸비하였으니 정확히는 우리나라 향교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興譲館(こうじょうかん)は、江戸時代の出羽国米沢藩主上杉治憲の命により、上杉綱憲の学問所を再建して成立した藩校である。ここでは主に江戸時代のことについて記載する。 創立・再建 1697年(元禄10年)6月15日に上杉綱憲が以前から孔子を祀る行事である釈奠を行っていた儒臣矢尾板三印の邸宅に学問所を設置、同年11月29日には同じ邸内に釈奠の会場となる聖堂.. 2023. 8. 11.
일본 근대적 교육기관의 기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의 메이지 이전 교육기관의 상당수는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넘어왔는데 이는 일본전통의 보호 같은 한가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학교" 전통이 약하다. 에도시대 이전 제대로 된 "학교"가 없었다. 헤이안시대에 우리의 국학에 해당하는 것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고대의 학문전통은 중세시기에 사찰의 승려와 귀족들을 통해 전수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바뀐 것은 에도시대부터였다. 막부는 막부학문소 (지금의 유가와세이토: 탕도성당), 각 번은 번교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데라코야가 있어 한국의 성균관-서원(향교)-서당과 유사한 형태의 전근대적 교육제도가 완성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우 "교육의 기원"은 막부학문소, 혹은 번교로 보는 시각이 매우 강하다. 한국은.. 2023. 8. 11.
당파 없앤다고 학교를 다 때려 부순 흥선대원군 이하응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의외로 아는 부분이 많지 않다. 대원군은 당시 당쟁의 온상이자 민폐의 진원지인 서원을 없앤다 하여 각광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서월철폐후 조선땅에는 40여 개 잔존 서원을 제외하면 서당 외에는 교육기관이 일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원철폐 후 이를 대체하는 교육기관을 국가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정황을 보면 아마 사실일 것이다. 대원군-고종 연간 상황을 보면 이 시기가 일본 메이시시대에 거의 대응하는데 필자가 이 시기에 조선왕실이 조금만 제정신이고 똑똑했다면 나라가 식민지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 이야 하는 부분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근대적 교육기관은 개화를 하게 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것..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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