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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동검8

세형동검이라는 이름은 일본 야요이 고고학의 정통 적자 필자는 고고학 전공자가 아니므로 틀릴 수 있다 그걸 감안하고 듣기 바란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 지표유물 중 하나인 세형동검. 이 동검 이름은 한 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세형동검이라는 이름이 비파형동검과 대조하여 하나는 넓고 하나는 좁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아는 한 그게 아니다. 세형동검은 내가 알기로 비파형동검이 알려지기 전, 일본에서 먼저 붙인 이름이다. 이유는 일본 야요이시대에도 한반도 영향을 받아 세형동검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 야요이 시대 후기에는 이른바 평형동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폭이 넓다. 이 평형동검과 달리 같은 야요이시대에 폭이 좁은 동검이 있다고 해서 일본에서 붙인 이름이 세형동검으로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과 비교하여 나온 이름이 아니다. .. 2024. 3. 24.
[고고학용어] 비유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비파형동검 vs. 세형동검 이 둘은 분포지역, 그리고 성행 시기가 다르지만 계승관계로 보기도 하거니와 이설이 많기는 하나 대체로 기원전 8세기 무렵 요동반도에서 등장해 그곳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비파형동검이 기원전 4~3세기 무렵에는 한반도에서는 그에서 비롯한 세형동검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이른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더 발달한 형태처럼 보이는 비파형동검이 나중에 등장했을 법 하나, 볼품없는 세형동검이 후발주자다. 저 둘은 이칭이 많다. 또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과 한국에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아무튼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일반화한 명칭이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lute-shaped bronze dagger]과 세형동검細形銅劍[Slender Bronze Dagger]이어니와, 여러모로 이 두 동검은 서로를 염두에 둔 명명이거나 그렇게.. 2024. 3. 24.
쌀농사 따라 분포한 세형동검 대체로 세형동검 분포지가 쌀농사 북방한계선이며 진흥왕대 신라의 북진선이며 통일신라시대 북쪽 국경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왜 세형동검과 진흥왕 북진선과 통일신라 북쪽 국경이 거의 비슷한 선에서 멈추는가? 쌀농사 때문이다. *** Editor's Note *** 세형동검 분포지가 쌀농사 북방한계선 안에 대체로 위치한다는 점이 늘 필자가 지적하듯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세형동검 기능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고고학은 기능에는 관심 제로다. 이것이 비극 아니겠는가? #세형동검 #세형동검분포지 #세형동검_벼농사 2023. 12. 4.
초기세형동검과 명도전 박선미 선생의 "기원전 3-2세기 요동지역의 고조선문화와 명도전유적" 논문에 나오는 지도다. 필자가 항상 생각하는 것 중에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과연 구리제련이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싶은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전통시대에 구리생산이 넉넉했던 때가 없다. 따지고 보면 석검이라는 것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도 위세품으로서 청동검을 만들어 낼 구리의 양이 모자라서 아닐까 싶은데 흔히 용범이 나오면 청동기제련과 주조가 모두 현지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제련과 주조는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 가마쿠라 시대 대불을 송나라 동전을 가지고 주조했듯이 용범이 나와도 그 주조의 재료가 어딘가에서 제련한 구리냐 아니면 이미 만들어 진 청동기물을 녹여 재주조한 것이냐는 완전히 .. 2023. 5. 4.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을 녹여 만들지 않았을까? 한반도 비파형동검은 원래 숫자가 그 정도였던 것이 아니라 그걸 녹여 세형동검을 만드는 바람에 남아 있는 숫자가 적어지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세형동검도 놋으로 만드는 그 무엇인가 위세품이 하나 더 나왔다면 지금보다 적은 수가 남았을지도 모른다. 세형동검 뒤에는 동검 계보가 끊어진 덕에 세형동검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가 남았을지도. 게다가 세형동검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시기는 아직 놋그릇도 없고 불상도, 동종도 없던 시기다. 고물로도 쓰일 기회를 놓치고 무덤으로 들어간 것일지도. 2023. 4. 17.
세형동검이 수 백개는 녹아 들어갔을 성덕대왕신종 우리나라는 알다시피 구리가 잘 안 난다. 청동기시대 위세품으로 동검과 함께 석검이 많이 쓰인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뭔가 폼잡을 게 필요한데 구리가 워낙 안 나다 보니 석검으로 만들어 차고 칼자루만 세형동검처럼 위장하지 않았을까. 지난 주말에 학회를 참석하고 시간이 남아 경주박물관을 들렸다. 성덕대왕신종이 보였다. 그 규모에 새삼 놀라면서도 도대체 저 구리가 어디서 났을까 궁금해졌다. 아마 구리를 사오기도 했겠지만, 전해 오는 고물 청동기물도 많이 저 종 안에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에밀레 종 전설처럼 스님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았을때 아마 돈을 내놓고 전답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청동기물을 내 놓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성덕대왕 신종에는 그때까지도 전해오던 세형동검 수 백..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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