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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17

살아서 꿔다논 보릿자루였다가 시체로 유명해진 투탕카문 앞서 말한 대로 이 친구 대표적 사기 행각의 선두주자라 살아서는 존재감 제로였다가 그 시체가 발견되면서 아연 유명해졌다. 고대 이집트 18왕조 후반인 기원전 1332년에서 1323년 사이를 통치한 고대 이집트 파라오라지만 꿔다논 보릿자루에 지나지 않았다. 투탕카텐 Tutankhaten 으로 태어난 그는 KV55 미라로 생각되는 아케나텐 Akhenaten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투탕카멘은 특별히 중요한 왕은 아니었지만, 그의 무덤이 현대에 온전하게 발견된 유일한 왕실 매장지였다. 이 무덤은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왕의 무덤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록하고 고대 이집트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투탕카멘, 인류사 최고의 빈깡통 2024. 4. 28.
투탕카멘, 인류사 최고의 빈깡통 뭐 이런 유물 잔뜩 나오니 저런 유물로 떡칠한 투탕카멘이나 그 이집트 왕국이 대단했을 거 같은 착각을 유발하나 빈깡통이 소리가 요란한 법이다. jot도 아니다. 비실비실 앓았는지 아니면 반란에 갔는지 파라오 노릇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18,9세에 훅 갔다. 화려한 유물을 그 권력 국력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저 황금가면 뒤집어쓴 투탕카멘. 실은 불쌍하기 짝이 없다. 저 마스크인지 이런 말이 있다 한다. “권력은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한테 날개를 펼친다. 죽음은 모든 겁장이한테 그 날개를 펼친다. Power opens its wings to those who deserve it, and death spreads its wings to every coward.” 빈깡통이다. 그가 오로지 하는 일이라곤.. 2024. 4. 26.
그리 크달 수 없는 브리티시 뮤지엄 브리티시 뮤지엄은 사흘 연속 훑으며 촬영했는데, 대략으로 다 훑었다. 물론 수장고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상설전시실 기준으로 큰 박물관이라 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 시대 약탈박물관임은 부인할 수 없고 그 시절에 약탈한 좋은 유물을 많이 소장했다는 사실도 분명하나 이제 그 약탈품이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지니는 시대는 지났다. 이집트? 그리스? 그 본토에서 이후 출토된 유물이 무지막지해서 그 본토에 대해 결코 비교우위가 없다. 아테네고고학박물관을 보면 그 무지막지한 컬렉션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아니한다. (2019. 7. 27) *** 루브르니 브리티시뮤지엄이니 하는 데가 비교우위를 지닌 점은 그 역사성과 몇몇 유물이 독점한 명성 때문이니 전자만 해도 모나리자 한 점으로 얼마든 장사를 해먹.. 2023. 7. 27.
아기부처와 어린 태양신, 그리고 네페르템 by 유성환 "연꽃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Narayana)의 배꼽에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世界蓮華思想)이 나타났다. 세계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蓮華化生)의 의미로 연결되었다. 모든 불보살의 정토를 연꽃 속에 들어 있는 장엄한 세계라는 뜻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하는 것도 세계연화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연종보감蓮宗寶鑑》권 8을 보면, “정토에 나서 그 연태(蓮胎)에 들어가 모든 쾌락을 얻는다”라고 했다. 염불로 .. 2023. 5. 29.
[유성환의 AllaboutEgypt]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11) 잔난자 사건 안녕하세요. 약 2주간 데드라인이 있는 이런저런 업무를 수행하느라 몹시 바빴습니다. 이번 포스팅이 투탕카멘에 대한 마지막 연재이자 올해 마지막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제 이야기에 관심 보내주시고 "좋아요"와 "최고에요" 눌러주신 페친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오늘은 투탕카멘(Tutankhamun: 기원전 1336-1327년) 사후 왕위계승을 둘러싼 혼란 상황, 그리고 소위 ‘잔난자 사건’(Zannanza Affair)이라고 불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의 외교적 불화가 발생한 이유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잔난자 사건’은 투탕카멘 대왕비(Great Royal Wife) 앙케센아문(Ankhesenamun)이 당시 이집트 적국 히타이트 신왕국의 수필룰리우마 1.. 2022. 12. 29.
[유성환의 AllaboutEgypt]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 (10) 투탕카멘의 사인 - 국왕살해의 범인은 누구인가 (2) 투탕카멘 Tutankhamun (재위 기원전 1336~1327) 사후 왕위에 오른 인물은 아이 Ay (재위 기원전 1327~1323)와 호렘헵 Horemheb (재위 기원전 1323-1295)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소년왕을 살해한 범인들일까요? 롱아일랜드 대학 Long Island University 선임연구원 밥 브라이어 Bob Brier (1943년-현재)는 투탕카멘을 시해한 범인으로 아이를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아이 역시 투탕카멘을 살해할 이유가 거의 없는 인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여러 정황 증거를 근거로 학자들은 아이를 아멘엠하트 4세/아켄아텐 Amenhotep IV/Akhenaten (재위 기원전 1352~1336) 어머니인 투야 Tuya 형제, 그리고 / 혹은 왕비 네테르타리 N..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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