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 신동훈 & 김태식/1-외치 이야기54 [외치이야기-47] 외치와 마왕퇴 필자가 보기에 미라 연구에서 두 번의 중요한 사건을 들자면, 하나는 외치이며 다른 하나는 마왕퇴다. 마왕퇴는 중국에서 발견되고 순수히 중국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된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안 알려지고 저평가되는 감이 있는데필자가 동아시아의 학자로서 보다 많은 이런 정보를 종합하고 이해하여 결론 내려 본다면외치와 마왕퇴, 이 두 연구는 미라 연구사에서 막상막하의 업적을 남겼다. 이 두 사례 모두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역사학적 연구로만으로 공백이 되기 쉬운 많은 실증자료를 안겼고 특히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한 측면, 그리고 당시 사회에 대한 역사학적 이해를 풍부하게 했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외치의 경우 마왕퇴보다 한걸음 더 나간 것이 있다면당시 떠오르기 시작한 고대.. 2025. 2. 3. [외치이야기-46] (한국이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외치의 싸움 여진족이 통일되어 주변에 대한 정복전을 시작할 때까지 이들은 집단안 싸움으로 날을 샜다. 농업사회 주변부에 형성된 수렵사회에서 (물론 여진 만주족은 완전한 수렵사회는 아니며 반농반수렵사회라 하지만)내부에서 서로 치고 받는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외치의 죽음과 그 죽음 직전의 싸움을 범죄자에 대한 추격 내지는 반대로 악당의 습격을 받아 죽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유럽 사회에서는 일반적인데 사실 이건 요즘 유럽 사회처럼 안정된 사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라보는 해법이며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의 정황은 이와는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마치 여진족 내부에서 벌어진 집단 내부에 만성화한 싸움처럼이들도 항용 서로간에 활을 당기고 칼질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말이다. 누구.. 2025. 2. 3. [외치이야기-45] 경계인은 농경사회의 적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주 잊는다. 외치가 레반트지역의 농사꾼의 후손이라고 하니 아무리 사냥꾼이라도 주변의 농경사회와 알콩달콩 잘 지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럴까. 역사적으로 볼 때 농업사회 주변의 수렵민들은 농경민들과 잘 지낸 적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완전한 수렵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완숙한 농경사회인 한반도의 주변부 경계인의 역할을 하던 말갈족과 여진족은지금은 이들이 깡그리 사라졌으니 그렇지 장기간에 걸쳐 한민족의 숙적이었다. 이러한 또 다른 예는 일본사에서 동북지역에서 줄곧 치고받던완숙한 농경사회인 야마토와 수렵채집단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에미시의 대립도 그렇다. 이들 역시 거의 소멸할 때까지 야마토의 집중적 공략을 받았다. 그렇다면-. 외치는 어떨까? 그는 농경사회의 주변부 .. 2025. 2. 3. [외치이야기-44] 초기 농경사회의 경계인 외치가 살아 있을 무렵 유럽은 이미 신석기 농경사회에 진입해 있었다. 이 농경사회의 기원은 레반트 지역에서 온 농경민들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유전적으로 볼 때 외치는 이 레반트 기원의 농경민에 속한다는 것도 말했다. 하지만 외치는 농민이 아니다. 그는 반농반수렵도 아니고현재로서는 완전히 수렵 채집에 기댄 생활을 영위하던 사람이었다고 보고 있다. 농경사회의 수렵인이라니, 그 실체가 무엇일까? 유럽에서의 신석기시대 농경의 확산을 그린 그림을 보자. 가장 먼저 레반트 지역에서 농경이 발생하고 이것이 에게해 주변으로 확산한다. 초기 농경은 지중해를 따라서 확산한다. 일부튼 다뉴브강을 따라 중부 유럽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문제는 외치가 발견된 지역인데, 여기는 알프스 산맥 때문인지 주변 지역보다 상당히 농.. 2025. 2. 3. [외치 보유편] (7) 태투 외치Ötzi 몸에서는 곳곳에 피부에 작은 절개incisions를 하여 목탄charcoal을 문지른 선과 십자가 형태 문신 50개가 확인됐다.마모wear and tear 흔적이 있는 신체 부위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상징적인 가치가 아닌 치료적인 목적이었다는 견해가 있다.앞서 비교적 상세히 다뤘지만 보강 차원에서 상기해 놓는다. 2025. 2. 2. [외치이야기-43] 외치는 농경민인가 수렵민인가 외치의 당시 사회적 정체성을 말하자면, 이 사람은 농경에 의존하여 농사 짓고 살던 사람이 아니다. 죽을 때 가지고 있던 물건들, 그리고 여러 가지 검사결과를 종합하면 이 사람은 농사꾼이라기 보다는 사냥꾼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 그러면 목축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지금도 알프스 산록에는 목축을 많이들 하는데 이런 목축업자의 선구가 되는 사람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사람은 목축을 하던 사람도 아니다. 왜냐 하면 외치가 활동하던 무렵에는 아직 유럽에 목축이 성립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보고로는 유럽의 목축은 외치보다 후대에 성립하였다고 하며,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외치의 유전자 검사에서는 그가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 보유자로서,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2025. 2. 2. 이전 1 2 3 4 ··· 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