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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주 잊는다.
외치가 레반트지역의 농사꾼의 후손이라고 하니
아무리 사냥꾼이라도 주변의 농경사회와 알콩달콩 잘 지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럴까.
역사적으로 볼 때 농업사회 주변의 수렵민들은 농경민들과 잘 지낸 적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완전한 수렵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완숙한 농경사회인 한반도의 주변부 경계인의 역할을 하던 말갈족과 여진족은
지금은 이들이 깡그리 사라졌으니 그렇지 장기간에 걸쳐 한민족의 숙적이었다.
이러한 또 다른 예는 일본사에서 동북지역에서 줄곧 치고받던
완숙한 농경사회인 야마토와
수렵채집단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에미시의 대립도 그렇다.
이들 역시 거의 소멸할 때까지 야마토의 집중적 공략을 받았다.
그렇다면-.
외치는 어떨까? 그는 농경사회의 주변부 사냥꾼으로
남쪽의 농경민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을까?
아니면 한반도의 여진족,
야마토의 에미시에 대한 적대감처럼
그 역시 공격의 대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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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이야기-44] 초기 농경사회의 경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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