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11 조선후기: 저수지를 만들어 평야를 관개화했을까? 우리는 조선후기에 사방에 저수지를 만들어 평야지대까지 모두 관개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없는 게 아니고 이미 어느 정도 되어 있다. 대략 우리나라, 17세기 경부터 전국적으로 개간의 열풍이 불었는데 이때 수리시설이 꽤 많이 만들어졌다. 무슨 수리 시설이 만들어졌을까? 저수지? 17세기 우리나라 개간에 대한 연구를 보면, 몇 가지 점에서 놀란다. 첫째, 수리시설이 폭증한 곳이 의외로 경상도 지역이라는 점. 둘째, 폭증한 시설이 저수지가 아니라 보라는 점. 셋째, 우리나라 관개용수는 저수지로 논에 물댄 곳은 거의 없고 대부분 보로 물을 댔다는 점.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보 설치가 급증하면서 비로소 봄철 가뭄 문제를 극복하고 이앙법이 보편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4. 9. 14. 도작의 집중화가 일어난 곳: 한반도인가 일본열도인가 일본열도야요이시대에 도작은 한반도에서 넘어갔다. 이것은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일본열도 큐슈 북부에는 한반도에서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도작 유적들이 나오는데야요이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촌락들은 도작에의 의존도가 아주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반도의 도작은 잡곡과 함께 혼합농경의 형태로 한반도를 남하하였다. 그렇다면-. 도작이 다른 잡곡을 압도하여 도작에 의존도가 아주 높은 형태로 진화하는 현상은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일어났을까.도작에 아주 높은 정도로 의존하는 촌락은한반도 남부에서 생겨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생겨났을까.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은한반도 남부에서 이미 쌀농사를 주력으로 채택하였을까 아니면, 일본열도를 건너간 다음 쌀농사를 다른 잡곡보다 훨씬 많이 .. 2024. 9. 14. 야요이인 논의를 시작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바, 야요이인 이동에 대한 논의를 이제 시작하고자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국문학술지에 야요이인 이야기를 쓰고는 아무 반응도 접하지 못하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고,많이 읽는 일본어권 학술지에 글을 실어 일본에서 관련 논의의 중심에,태풍의 눈으로 직접 들어갈 생각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고대 한국인이 일본열도에 건너가 현대 일본인의 기원이 되었네 아니네나아가서는 일본의 덴노가 백제인의 후예이니 아니니 이런 이야기의 귀추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팩트만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한반도에 불리한 이야기일지라도그것이 사실이라면 다 인정하고 밝힐 생각이니, 필자가 야요이인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 한국편만 들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노라. 2024. 9. 14. 글은 열독율과 임팩트를 보고 언어를 선택하는 것 세계화의 시대. 논문을 비롯한 글은 모국어인 국문으로만 쓰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대학에서는 영어권 논문을 장려하여 국문 논문을 평가절하 하는 경향도 있지만 결국 논문은 독자의 열독율과 실제로 식자층에 던지는 임팩트를 보고 써야 하므로 주제에 따라 언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안에 따라서는 영어로 써 봐야 아무도 안읽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야요이인의 기원문제.이런 주제는 영어로 써 봐야 읽지도 않는다. 이해 당사자가 한국인과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논문은 한국어 혹은 일본어로 쓰야 하며 그안의 세부 주제에 따라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둘 중에서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필자는 앞으로 야요이인의 기원에 관련하여 장기간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여그 결과를 글로 발표할 것인데, 거의 대부분을 일본.. 2024. 9. 13. 60 이후의 글: 학계가 아니라 시간에 묻는것 60이전의 글은 학계를 보고 쓴다. 내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학계다. 60이후의 글은 학계를 보고 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대면하며 쓴다. 주변의 선학들 의견을 들어보면 연구가 온전한 정신으로 가능한 나이의 한계는 75세다. 그 이후의 글은 후세의 평가를 생각하면 완성도의 측면에서 안 쓰는 게 더 낫다는 뜻이다. 따라서 황금같은 60세 이후 15년을 학계로 상대로 쓰면서 낭비할 수는 없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에서는 학계와 심리적으로 절연하고 시간만을 앞에 두고 대면하면서 글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시점이 되면 독자는 시간이며 내 앞에 놓인 것은 팩트 그리고 펜과 종이만 남는다. 2024. 9. 13. 잡곡농사보다 도작이 우월한 것이 아니다 잡곡농경과 도작농경의 생산성 차이는 필자가 보기엔 한반도의 경우, 연작 가능성 유무에 달려 있었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잡곡농경 자체가 도작 농경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척박한 한반도 환경에서는 순수 잡곡농경으로는 연작이 도저히 불가능하여 떠돌이 화전농경을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 그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같은 잡곡농경이라도 황하유역처럼 범람으로 특별한 시비없이도 매년 연작이 가능한 땅이라면, 당연히 문명이 일어난다. 신석기시대 잡곡농경만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문명이 황하유역에서 일어난 이유 그리고 청동기시대 도작이 시작되면서부터에야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유는 잡곡과 농경의 생산성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무논과 연작 가능성, 한반도의 척박한 토질조건 등 이런 부분이.. 2024. 9. 12.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33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