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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농경과 도작농경의 생산성 차이는
필자가 보기엔 한반도의 경우,
연작 가능성 유무에 달려 있었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잡곡농경 자체가
도작 농경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척박한 한반도 환경에서는
순수 잡곡농경으로는 연작이 도저히 불가능하여 떠돌이 화전농경을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
그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같은 잡곡농경이라도 황하유역처럼
범람으로 특별한 시비없이도
매년 연작이 가능한 땅이라면,
당연히 문명이 일어난다.
신석기시대 잡곡농경만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문명이 황하유역에서 일어난 이유
그리고 청동기시대 도작이 시작되면서부터에야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유는
잡곡과 농경의 생산성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무논과 연작 가능성, 한반도의 척박한 토질조건 등
이런 부분이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반도의 지리가 내재한 이러한 본질적 척박함은
수전경작과 함께 인위적 홍수를 매년 반복함으로써
비로소 극복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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