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정부는 왜 굳이 두 자매 중에서도 김영나를 택했을까?
확인된 바는 없지만, 김리나의 나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 있다.
김영나가 관장에 취임했을 때 이미 김리나는 홍익대를 정년퇴임한 상태였다.
더불어 그는 같은 문화부 산하기관으로서 근간의 기능에서는 같다고밖에 볼 수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정형민과도 여러모로 비교되곤 했다.
김영나보다 1년 뒤인 2012년 1월 공모 형식을 빌려 미술관장에 취임한 정형민은 서양미술사를 배우기도 했지만 미시간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박사를 동양미술사로 했다.
같은 서울대 교수로서 그 박물관장을 지낸 김영나에 견주어 정형민은 이 대학 미술관장을 역임했다.

출신은 다르다. 경기여고 출신 김영나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뮬렌버그 대학과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학부와 석박사 학위를 한데 견주어 정형민은 같은 대학 응용미술학과 출신이다.
이런 전력을 감안해 문화계에서는 두 사람 직책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말도 더러 있었다.
내친 김에 두 사람 성향을 보면 극과 극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김영나는 흡사 생평을 공주로 자란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말씨도 그렇고 실제 행동 역시 그러한 듯하며, 이는 업무 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뭔가 치고 나가는 추진력은 부족한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은 다 몰아부쳐 쟁취했는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만이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밖으로는 그런 일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니 그런 점에서 그는 복받은 케이스였고 이것이 장수비결 중 하나였다.
전반으로 보아 언니 김리나와는 상반한다는 평이 많다.
나아가 저런 성격은 누군가 챙겨주어야 하는 그런 성향으로 비치게 했으니 실제로 그런 면모가 짙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본인이 아니라 하면 할 말이 없다만.
반면 정형민은 개성이 너무 강했다.
업무 처리는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관장 재직 시절 내내 일었으며, 이것이 결국은 좋지 못한 일로 중도하차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나중에 법적 소송 끝에 부당해고였다는 판결을 받아내지 않았나 기억하지만 이미 기차는 떠나고 없었다.
그에 견주어 김영나는 장수에 장수를 거듭한다.
(201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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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5) 김영나 시대의 박물관(1) 초대 관장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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