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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글과 특정 계층에만 통용하는 글

by taeshik.kim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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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 전업적 학문종사자의 글쓰기 양태로 60 이후에는 학계 동료들이 아니라, 시간을 향해 글을 쓰야 함을 역설했거니와 ( 60 이후의 글: 학계가 아니라 시간에 묻는것

이것이 결국 독자 readers 가 누구인가를 상정하느냐는 문제니, 이 독자 문제는 글쓰는 방식까지 구속한다. 

나는 저와 같은 문제 혹은 고민을 별로 해 본이 없다.

기자로서는 말로야 지구촌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독자 한 명을 위해서도 쓰야 한다고 말을 했고, 실제 그런 문투 그런 내용으로 내 전직 기자생활에서 악명이 높았지만,

그에 투신할 때도 그렇고, 그것을 떠난 마당에도 나는 언제나 나름으로는 저 두 가지를 나름 조화하는 방향으로 부단히도 애를 썼다고 나를 위로해 둔다. 

나는 31년을 기자생활을 했으니, 이 기자라는 압박은 저 독자와 관련해 언제나 글쓰기 눈높이, 간단히 말해 독자층이 고정해 있어 그 옛날에는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는 이라는 시각이 작동했다. 

요새야 뉴스소비계층이 워낙 광범위해져서 초등학생도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라, 저 독자하한층은 더 내려가야 한다고 보지만,

언론도 이른바 전문지라 해서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제너럴 뉴스를 기반으로 삼는 언론은 거개 누구나 읽어서 이해가 가는 그런 문체를 요구받는다. 

그런 까닭이 전통 시각이기는 하지만 뉴스에는 원칙이 각주와 참고문헌이 붙을 수는 없다.

이것이 깨진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 아직까지 foot note가 드러나는 기사는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한국언론의 경우 기사 말미에다 도움받는 글이라 해서 그 참고문헌을 밝히기도 하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내 경우는 내 그런 기사는 대체로 본문에다가 모조리 쑤셔박는 방식을 채택했으니, 예컨대 보통은 삼국사기에 따르면이라는 식으로 처리했을 전거를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 제10 민애왕 즉위년(838) 조 라는 식으로 표현하곤 했으니,

이것도 시도해 보니 너무나 거추장스러워 훗날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민애왕이 즉위하던 838년에 같은 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나름 경화처리를 하기도 한 경험이 있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샌 감은 있는데, 생평 나는 독자를 중등생 이상 불특정 다수를 상정한 글쓰기 삶을 살았고, 그런 삶이 인이 박혔으니,

신 교수가 말하는 저와 같은 글쓰기 패턴 변화에 대한 주문을 실상 저런 분야를 전업으로 삼는 사람들한테 필요한 대상이 되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한때나마 저쪽에 몸담아 논문이라는 것들도 싸질렀다는 말을 많이 했으니,

그러고 보면 그런 내 논문이라는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비난성 상투 심사평가서 이야기를 해두어야겠다. 

그네들이 매양 하는 말이 간단히 요약하자만 "왜 논문이 논문 같지 않고 신문기사 같냐"는 투였으니, 논문에는 논문에 맞는 격식이 있다는 요지였다. 

그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네들 말마따나 그 논문들조차 나는 단 한 순간도 독자를 이른바 학계로 국한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한 적은 없다는 말은 해 둔다. 

지금도 나는 왜 논문이 왜 저 모양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반발이 극심하다.

왜 논문이라 해서 동료 몇 명 혹은 동종업계 종사자들로만 국한해야 하는가?

나는 언제나 이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런 용인 혹은 관행을 용납할 수가 없었으며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논문이건 뭐건 공간하는 그 모든 출판물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발신해야 하며, 이 불특정 다수한테서 심판받아야 한다. 

그 불특정 다수가 읽어서 좋은 글이 좋은 논문이라는 생각은 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직업적 학문 세계와는 조금은, 아니 어쩌면 왕청나게 다른 결을 걸은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 양태 몇 마디를 덧보태어 둔다.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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