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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사금갑 이야기는 판본이 여러 개임을 봤다.
더욱 간단히 말하면 삼국유사가 유일본이 아님을 확인했다.
사금갑 이야기는 버전이 여러 개였다.
그 일환으로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말한 사금갑 이야기가 독특함을 이야기했다.
그에서는 왕비와 그의 내연남 내전 분수승이 복주된 이유가 반란, 곧 소지왕을 시해하려 했기 때문임을 지적했다.
한데 내가 빠뜨린 또 하나의 사금갑 이야기가 있다.
그 이전 세대 사가정 서거정 뒤를 이어 성종~연산군 연간 조선 전기 문단의 총수로 군림한 성현成俔(1439~1504) 또한 사금갑 이야기를 남겼으니,
어떤 점에서 그가 말한 사금갑은 다른 사금갑 이야기와 만나며 갈라지는가?
그의 불후한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 권 제2에 보이는 한 토막이다.
신라왕[소지왕, 일명 비처왕을 말함-인용자]이 정월 15일에 천천정天泉亭에 거둥하였더니, 까마귀가 은銀으로 만든 함을 왕 앞에 물어다 놓았는데,
함 속에는 글이 쓰여 있되 단단히 봉해져 있었고, 그 겉면에 쓰이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두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낫다.” 하시자, 대신이 의논하기를, “그렇지 않사옵니다. 한 사람이란 임금을 말하는 것이옵고, 두 사람이란 신하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하여, 드디어 열어 보았더니, 그 속에는 “궁중의 거문고 갑(匣)을 쏘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말을 달려 궁으로 들어가 거문고 갑을 보고 활을 힘껏 당겨서 쏘니, 갑 속에 사람이 있었다.
이는 바로 내원內院의 번수승樊脩僧이 왕비王妃와 사통하여 왕을 죽이려고 그 시기를 미리 정하였던 것인데, 왕비는 중과 더불어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新羅王於正月十五日幸天泉亭。有烏銜銀榼置于王前。榼裡有書。封之甚固。外面書曰。開見則二人死。不開則一人死。王曰。二人殞命。不如一人殞命。有大臣議曰。不然。一人謂君。二人謂臣也。於是遂開見之。其中書曰。射宮中琴匣。王馳還入宮見琴匣。持滿射之。匣中有人。乃內院樊脩僧與妃通者也。將謀弑王。其期已定。妃與僧皆伏誅。
우리가 지금껏 본 사금갑 이야기들과 대략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적지 않은 세부 차이들이 있다.
먼저 내전 분수승과 사통한 여인을 이곳 역시 삼국사절요나 동국통감, 혹은 점필재처럼 왕비를 거론했다. 삼국유사가 말하는 궁주宮主가 아니다.
다음, 왕한테 미래를 예견한 문서를 종래 다른 판본들에서는 그냥 까마귀가 주둥이로 물어다 주었다 했지만 이에서는 그 미래 예언서가 은함에 담긴 상태였으며, 그 은함을 까마귀가 물어다 주었다 했다.
셋째, 저 예언서가 말하는 미래를 말한 사람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일관日官, 곧 점치는 관리라 했지만 이에서는 대신大臣이라 했다.
넷째, 왕비와 내전분수승이 죽은 이유가 한층 명확하다. 왕비와 내전분수승은 섹스 관계로 연결된 것은 물론이고 이를 기화로 왕을 시해하려고 날짜까지 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복주된 것이다.
왕을 시해하려 했다가 그것이 들통나서 죽임을 당했다는 버전은 점필재에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용재가 말하는 사금갑 사건은 점필재의 그것과 일맥으로 상통하나, 점필재의 그것에 견주어 한층 명료하다.
생몰년을 보면 더욱 분명해지지만 점필재와 용재는 거의 같은 시대를 호흡했다.
한편 저 사건에서 비롯되어 정월 대보름 약밥 습속이 유래한 이야기를 용재총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왕은 까마귀의 은혜를 생각하여 해마다 이날에는 향반香飯을 만들어 까마귀를 먹였는데, 지금까지도 이를 지켜 명절의 아름다운 음식으로 삼고 있다.
그 만드는 법은 찹쌀을 쪄서 밥을 짓고, 곶감ㆍ마른 밤ㆍ대추ㆍ마른 고사리ㆍ오족용烏足茸을 가늘게 썰어서 맑은 꿀과 맑은 장醬을 섞어 다시 찐 다음 다시 잣과 호도 열매를 넣어 만드는데, 그 맛이 매우 좋아 이를 약밥[藥飯]이라 한다.
속언에는, “약밥은 까마귀가 일어나기 전에 먹어야 한다.” 하였으니 대체로 천천정天泉亭의 고사故事에서 연유한 것이다.
王感烏之恩。每年是日。作香飯飼烏。至今遵之。以爲名日美饌。其法洗蒸粘米作飯。細切乾柹熟栗大棗乾蕨烏足茸等物。和淸蜜淸醬而再蒸之。又點松子胡桃之實。其味甚甜。謂之藥飯。俗言食飯當於鴉未起之時。蓋因天泉之事也。
지금 다시 돌아봐야겠지만 약밥을 까마귀한테 먹인다는 말이 지금껏 살핀 사금갑 이야기에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나아가 용재총화 독창성은 이에서 드러나는데, 약밥이라 했지만 그 약밥이 도대체 무엇을 재료로 해서 만드는지 논급이 전연 없지만, 성현은 그 만드는 방법을 저리 자세히 적었다.
더구나 그와 관련된 속담까지 채록했으니, 과연 당대 최고의 문한文翰답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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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6) 살아난 비처왕비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5%87-537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6) 살아난 비처왕비
전근대 동아시아 문헌에서 복주伏誅라는 말은 빈발한다. 간단히 말해 형벌을 받아 죽는다는 뜻이다. 더 간단히 사형당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비처왕비가 내전, 곧 왕궁 안에서 일하는 승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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